고향이 그리워도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거듭나기 전 신학교에 가기 전, 한 가닥 했을 때 막걸리 한 잔 하면서 많이 불러본 노래‘꿈에 본 내 고향’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북녘에 고향인 실향민들은 이 노래를 부를 때 아마도 터지고 타는 가슴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는 차원이 다르게 일 때문에, 건강 때문에, 이만저만한 이유 때문에 설 명절에 고향을 다녀오지 못하고 붙박이로 있는 곳을 지킨 분들이 이번 명절에도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이번에 고향에 명절을 맞이하여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2월 1일 월삭 예배와 이어지는 주일 예배 준비의 부담 때문입니다. 고향에서 치매로 4년이라는 세월동안 투병 중에 계신 어머님이 계시기에 만사를 제쳐놓고 다녀오는 것이 효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목사로 사는 죄(?) 때문에 어머님을 찾아뵙는 것을 주일 이후로 미루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처럼 늦은 명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사람은 설 명절에 고향을 다녀오지 못한 것이 그리 애처롭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지척에 두고 40-50년을 가보지 못하는 남녘의 실향민들의 아픔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제천에서 목회를 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지체들 중에 제천이 고향인 교우들이 가끔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나도 고향이 멀어서 명절에 고향 방문이라는 느낌과 감동을 받아보고 싶다는. 십분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경우에 따라 하루 종일 고속도로 트래픽에 시달리면서도 명절 때만 되면 2,000만 명 이상이 그 힘든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또한 목회지 때문에 고향을 떠난 지 25년이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제 고향 인천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곳은 저의 어머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고향보다 더 좋은 곳을 이번 설 명절이 이어지는 주일에는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곳은 본향입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자가 이렇게 노래를 하였는데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4-16)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여행하는 자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선포하고 있는 이 말씀이 참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됩니다. 작고한 천상병 시인은 이 본향을 그리워하며 살았기에 그의 불후의 걸작인‘귀천’에서 이렇게 노래할 수 있었나 봅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본향을 사모하는 이 땅에서의 삶이 견고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도 월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울 엄마 보고 싶어 인천에 갈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