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에 사는 저는 그리 아름다운 단풍 관광지를 10년을 살면서 단풍철에 맞추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찾아 전국을 누빕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풍광에 감탄하며 절로 탄성을 지릅니다.
저 역시 요즈음 같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을 스케치 할 수 있는 계절이 귀하고 또 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을 만끽함과 동시에 이 계절에 또 다른 즐거움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것은 책과 함께 하는 가을의 아름다움입니다.
“에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교우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가을, 정말로 아름다운 이 계절에 나는 영혼의 풍성함과 인격의 살을 찌우는 독서로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하는 우리 교우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과 1시간, 2시간의 투자로 인해 대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책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이것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고전을 읽으며 풍성한 지혜를 얻고, 시를 읽으며 각박한 삶을 관조해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농축된 진한 향기들을 맡아보고, 신앙의 유익한 서적들을 읽으며 신앙의 선배들의 노래를 들어보고, 수필들을 읽으며 아름다운 낭만과 기쁨을 체휼하고, 전문서적을 읽으며 삶의 수준을 높일 수만 있다면 우리들을 유혹하는 단풍의 멋이 어찌 상대나 되겠습니까?
작금의 현실은 매스 미디어의 포로가 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매스 미디어는 우리들을 단순성의 포로가 되게 만드는 원흉입니다.
어느 작가가 지하철을 탄 뒤에 이렇게 소회를 밝힌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에는 두 가지의 현상이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겸손과 집중력이다.”
저는 이 말이 맨 처음에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부연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두가 휴대폰 액정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겸손, 그리고 액정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집중력을 꼬집는 그의 글을 보다가 실소(失笑)했습니다.
토요일 리더반은 리차드 포스터의‘기도’를 함께 섭렵하고 있습니다.
양육 3기는 카일 아이들먼의‘거짓 신들의 전쟁’을 읽고 있습니다.
양육 4기는 존 비비어의‘순종’을 읽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체들이‘악’하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몰라도 후에 그 비명은 행복의 노래로 바뀔 것입니다.
책 읽는 교회, 정말로 종이 꿈꾸는 교회이고 행복한 교회가 아닐까요?
담임목사도 지난 주간, 데이빗 램의‘내겐 여전히 불편한 하나님’을 대상으로 금년에 92번째의 독서 할당량을 마쳤습니다.
이번 주간은 계속 읽고 있는 폴 워셔의‘복음’과‘회심’을 둘째 주간에는 김세윤 박사의‘예수와 바울’그리고 심리학자 김태형 교수의‘트라우마 한국사회’를 끝내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2년 연속 실패했는데 잘 하면 금년에는 한비야씨가 만든 책 100권 읽기 프로젝트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우리 세인 교회는 담임목사와 성도들이 이 가을, 단풍 속에서 책 읽는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