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자 중 한분이 키보드에 커피를 쏟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부터 키보드에 소리가 잘 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전 반주자도 아니고 음악 분야에도 문외한이지만 그 기기가 야마하 sp90es 정도는 압니다. 슈퍼스타 k 등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 기계가 나오더군요. 그 비싼 장비를 고장 낸 것입니다. 몇 주후 방송실 엔지니어가 이것을 뜯어서 고치고 있더군요. 건반 뒷부분에 있는 지점이 끈적거려서 소리가 나지 않는 거라고 하더군요. 휴지 등을 이용해서 열심히 닦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예배당에서 음식물 섭취는 가급적 삼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후배의 글을 읽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 예배 시간에 진짜로 예배를 드리는 자는 몇이나 될까?”
요즈음 저는 목회의 후반전에 있는 목사입니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의 정년은 65세로 정관에 정해져 있기에 저의 신변에 급격한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앞으로 12년을 목회하면 저는 현장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분명히 목회의 후반전을 보내고 있는 목사라는 말이 맞습니다.
후반전에 있다는 말은 전반전을 마쳤다는 의미입니다.
전반전을 경험하고 난 뒤, 작금에는 이미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들의 목회의 삶을 많이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고지식한 예배 준비’입니다.
이미 한국교계에 부흥의 물꼬를 트셨던 초기 성결교회의 부흥사 선배 목사님은 토요일에는 목욕재계를 하고 사모님과 각방을 쓰셨다 했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아직도 현직에 있는 선배 목사님은 토요일에 하루를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며 설교를 준비합니다. 또 다른 지인 목사님은 아직도 은행에 매 주 방문하여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신권으로 바꾸는 천연기념물과 같은 선배도 있습니다. 저의 멘토 목사님은 금요일부터 주일 오전까지 일체의 외부 활동을 금하고 설교 준비와 원고 암송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위해 주님과 깊은 교제 안에 있다가 주일을 맞습니다. 이것은 고조선 시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동시에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입니다. 그러나 근래 예배자들을 보면 이 공식이 역전이 된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나오는 자들의 삶의 준비와 태도는 성직자나 평신도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신만큼은 매일반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공 예배 시간에 먹을 간식거리를 갖고 들어오는 자, 마실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자, 모바일 기계들을 서슴없이 이용하는 자, 예배 시간에 상투적으로 지각하는 자, 예배에 집중하는 자에게 집중력을 빼앗는 산만한 자, 졸고 있는 자. 큰 소리로 잡담하는 자, 예배자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패션쇼를 하는 자 등등 상당한 종류의 예배에 나온 비예배자들로 판을 치고 있습니다. 부산에 모 교회는 4,000명 이상이 출석하는 교회인데 본당에 스마트 폰을 비롯한 일체의 모바일 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전화 통화 금지 시스템을 설치해 놓은 교회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물론 물리적인 방법이라 무리수가 있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심정적 지원을 저 또한 합니다. 앞서 후배가 언급한 한 교회의 반주자의 한 예를 들었지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며 동시에 한 주간의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통하여 영적인 오늘의 부활을 경험함으로서 또 다른 한 주간 세상에서 승리하는 은혜를 공급받는 예배라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경건한 현장이 마치 커피 한 잔을 들고 들어와 카페에서 좋은 음악과 좋은 교양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착각하는 교양 있는(?) 신자들이 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그 옛날 예배를 준비하던 선배 목사님의 삶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지체들이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