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을 할 때부터 그랬고, 제주도 강정 마을에서도 그랬으며, 지금은 밀양에서도 그렇습니다. 국책 사업을 미룰 수 없다는 논리 말입니다. 국가가 갖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하여 밀어 붙이기 식의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지방 소도시에서 목회를 하는 현직 목사인 저는 정치적인 논리나 잣대를 갖고 논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세부적인 전문 지식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가부를 판단할 수도 없고 또 판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섣부른 지식과 얄팍한 정보로 누를 범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이기에 이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정도는.” 지난 주간에 속리산을 다녀왔습니다. 내일 진행될 가을 단풍 관광 사역 답사 차 다녀왔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속리산은 제법 많이 다녀온 듯합니다. 충청도 지역에서 목회를 하는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중부 지역까지 단풍의 아름다움이 내려오지 않아 속리산만이 갖고 있는 절경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산에서 몇 시간 있는 자체만도 행복했습니다. 숲길이 귀했습니다. 흙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뛰어노는 청솔모와 다람쥐를 보았는데 행복했습니다. 맑은 물과 소리가 좋았습니다. 조금 씩 조금 씩 물들어가고 있는 속리산 나무들의 옷 갈아입음을 보면서 하나님이 여전히 당신의 피조물들을 통치하심과 섭리하심에 경외함을 느꼈습니다. 속리산은 다음 주말 즈음이면 단풍의 절정을 이룬다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그 모습은 귀하게 아름다을 것을 압니다. 이런 아르다운 색칠을 하나님 외에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의도해서가 아니라 속리산에 들렸으니 자연히 법주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여고생들이 소풍을 와서 조용한 산사는 재잘거림으로 분주하고 시끄러워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여고생들의 아우성보다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공사소리였습니다. 팔상전을 보수하는 기계음 소리들이 왠지 모르게 산사의 고즈넉함을 앗아버리는 이 시대의 폭력과도 같은 소리로 저에게는 들렸습니다. 분명히 훼손 위기가 있는 문화재급 불교 시설을 보수하는 당위성과 타당성이 있는 공사인데도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팔상전 수리에 얽힌 공사 흔적들은 속리산 산세에 어울리지 않는 티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1절은 성경의 대명제입니다. 대학 4학년 때 E.J YOUNG 박사의 박사 학위 논문 저서이기도 한‘창세기 1장 연구’를 의미 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자는 1절과 2,3절과의 시공간적 상관관계를 학문적으로 풀어 나갔던 서울신학대학교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지식들이었기에 신선한 자극과 도전을 받았던 책으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역학적인 창세기 1:1과 2,3절의 분석을 열어가던 저자의 해박한 지식보다 더 또렷하게 새겼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책의 말미에 기록한 구절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역사적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상투적인 문구처럼 여겨지는 영 박사의 이 기술에 박수를 나는 30년 전에도 보냈지만 지금도 그 박수는 유효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테두리는 역사적인 사건이기에 인간에 의해서 조롱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기에 역사의 획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것들은 또한 당연히 보전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인 색깔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돌보라고 허락하신 자연계시인 자연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속리산은 속리산다울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나는 속리산에서 계속해서 다람쥐와 청솔모가 뛰어노는 모습이 내 자식과 손자 손녀 시대에도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후손들에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