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대로 산다는 것은? 민족의 명절인 추석 당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고속도로 정체를 피해 급거 부천으로 향했습니다. 기숙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픽업해서 영등포 처갓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를 조금 넘은 시간, 기다리고 계셨던 장모님과 처남 식구들, 처갓집 조카들과 오랜 만에 만남을 가졌습니다. 추도 예배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잠시 교제한 뒤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인천으로 향하여 요양병원에서 이틀 외박 허락을 받고 모신 어머님이 기다리고 있는 그리운 인천의 고향집에 도착했습니다. 부쩍 야위신 어머님을 보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또 가슴에서 솟구침을 경험합니다. 준비된 점심식사 상 앞에서 온 가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또 오랜만에 누님, 큰형님, 작은 형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식사 이후 어머님과 가족들과 이런 저런 덕담을 나누고 저들을 위해 강복(降福)했습니다. 가지고 간 책을 시원한 공간에서 섭렵하고 나니 오후 5시, 하루를 쉴 요량으로 올라갔는데 특새 준비 기도와 설교 준비의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어 스케줄을 포기하고 서둘러 저녁을 먹고 혹시 마지막 명절이 될지 모르는 어머님을 위해 다시 축복하는 기도를 드린 뒤 인천을 출발하여 제천으로 돌아온 시간은 아주 늦은 밤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리운 얼굴들을 다 만나고 축복할 수 있는 행복한 만남들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영등포 처갓집에 들어서자 저는 목사라는 이름에서 사위요 매제였고, 제부였고, 동서요 시누이의 남편, 작은 고모부, 이모부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인천 본가에 오후에 들어서자 저는 사랑하는 막내아들로 더불어 사랑하는 동생, 서방님, 그리고 작은 아버지로 또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라는 경직된 신분에서 벗어나 참 오랜만에 핏줄이 당기는 냄새가 나는 공동체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긴장을 풀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짧은 행복의 시간을 뒤로 하고 제천에 있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 저는 또 다시 목사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살아가야 하는 의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한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감에 있어서 다양한 이름을 지니게 됩니다. 그 이름은 후천적 상황에 따라 획득된 이름이기도 하고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결코 퇴색되어서는 안 되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름과 신분은 팔색조처럼 바뀌는 것이 인생이지만 어느 이름을 갖고 살든지 그 이름에 걸맞은 인격적인 삶과 올바르게 사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황제 나폴레옹이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게으른 장교에게 직접 가서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부지런한 군인이 되든지 하라고 호통을 쳤다는 야사(野史)에 기록된 이야기처럼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따라 안디옥 교회의 지체들을 향하여 안디옥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며 붙여준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26b) 투병 중이신 어머님과 장모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실 때까지 은혜 중에 영혼이 끝까지 아름답게 보전되시기를 기도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