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oo shall pass away. 조신영 작가의‘고요한 마음’을 읽다보면 이 영어 문장이 계속 등장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대중 연설을 할 때 자주 인용했던 숙어용 문장, 스콧 피트 제럴드가 그의 책‘위대한 개츠비’자주 인용해서 유명해진 말을 작가는 글을 쓰는 서두에 소개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난 주에 아들이 제대 20일을 앞두고 본인이 근무하는 대전 국군 병원에서 이름도 어려운 비중격만곡증 수술을 했습니다. 교회 사역이 맞물려 수술 당일에 부모들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는데 목요일 면회를 가보았더니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에 있었습니다. 수술 이후 통증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인들의 말 때문에 염려도 되었고 제대를 앞두고 시설 좋고 안전한 서울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할 것이지 군인 병원에서 시험용으로 아들을 맡겼다는 나름대로의 야단(?)도 맞았기에 내심 기도하며 맡겼지만 수술 당일 그 어떤 날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한 것이 사실입니다. 병실에서 아들의 얼굴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감사함과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건강하게 깨어난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수술 당일 유별나게 하지 말라는 아들의 지청구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옆에서 함께 해 주지 못한 미안함이 밀려와 눈이 충혈 되는 것을 아들에게 보이지 않고 숨기려고 힘들었습니다. 코 밑을 붕대로 막았지만 아직은 출혈이 완전히 멈추지 않아 연신 코피가 나고 있는 아들의 그 흐르는 피는 아침에 일어날 때 많이 흘리던 코피와는 차원이 다른 코피라서 감사했습니다. 3일 동안 세안을 하지 못하고 머리도 씻지 못해 미치겠다고 불평을 하지만 그 불편함은 며칠의 일이기에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귀 안쪽에 있는 피부를 절개해서 귀에도 압박 붕대를 하고 있는 아들을 보고 큰 일했다고 격려해 주다가 갑자기 1년 9개월 전, 논산 육군 훈련소로 출발하기에 앞서 아들의 건강한 군복무를 위해 기도해 주었던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날이 엊그제 같은 데, 이제 건강하게 군복무를 마칠 때가 되고 성장하면서 고질적이었던 비중격만곡증 수술까지 마친 것을 보면서 세월이 어쩌면 이렇게도 빠른가를 가늠하다가 갑자기‘This too shall pass away.’가 생각이 났습니다. 삶의 여정 중에 순간 어려움이 임할 때, 숨이 막힐 것 같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동서남북 어디를 바라보아도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절망이 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경제적인 고통으로 인해 금시라도 내 삶이 어떻게 될 것 같은 무거운 짓누름이 엄습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때마다‘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조금은 더 여유롭고 행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금요일 오후,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나서는 데 압박 붕대를 코에 두른 채 손을 흔드는 아들이 입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 나도 저 차 타고 집에 가고 싶다.” 약 2주 정도 제대 날짜를 남겨두고 있으니 얼마나 시간이 더디 가겠습니까? 그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조심하라고 했다. 몸조심해라.” 그리고 아들에게 또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르고 있습니다. 그 날을 향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