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선배 목사님들은 어떻게 70세까지 목회하셨지?”2024-04-01 16:21
작성자 Level 10

금요일 오후에 성경학교가 개교했습니다.

개강예배 축도를 맡아서 조금 일찍 나아가 예배를 준비하는 찬양을 보게 되었습니다.

숙달된 주일학교 선생님의 율동 설명과 동영상을 통해 나오는 찬양을 따라 하는데 도무지 내가 지금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보 짓을 하고 있는지 구분이 안 되게 헤매고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교육 전도사 시절, 그래도 율동을 감이 있게 어느 정도는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했었는데‘이번에는 영 아니올시다.’였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다 때가 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공부도 때가 있고 운동도 때가 있고 사랑도 때가 있고 등등 말입니다.

요즈음 성경학교를 지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빠른 템포의 노래들, 어디선가 많이 본 둣 한 캐릭터들, 잘은 모르지만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이돌이 율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현란한 움직임을 동반한 찬양의 율동들은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아이들은 순발력 있게 적응한다는 점입니다.

대학 시절 보수적인 신학대학을 다닐 때여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기독교 윤리학자인 리처드 니버의‘그리스도의 문화’를 접하고 읽으면서 참 신선한 도전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기존에 들었고 은근히 강요받았던 나름대로의 규칙들을 넘어서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도 모르게 학습된 문화에 대한 아이콘으로는 당연히‘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로 고정하는 것이 은혜요 신앙인의 고백이라고 여겼는데 니버를 접하면서 도리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라면‘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Christ Transforming Culture)의 관점에서 서는 것이 건강한 목사의 태도라고 생각을 하게 했던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줍지만 목양의 현장에서 그렇게 사역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니버가 말한 대로 이론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문화를 포용하고 아우르고 부대껴야 함을 알고는 있지만 그 갭을 좁히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찬양을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으니 그 공동체의 무브먼트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은 재론해 무엇 하겠습니까?

얼마 전 아내가 요즈음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을 종편에서 하는 데 인기몰이가 대단하다는 너스레를 펴는 바람에 우연히 재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70-80세에 이른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기 배우들의 좌충우돌 유럽 여행기를 예능 프로그램화 한 줄거리였습니다.

프로그램은 70-80세의 할배들이라고 보기에는 파격적인 의상, 행동들을 필름화해서 재미를 극대화한 우리나라 유명PD의 작품인 것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유명 PD의 의도대로 저 나이에 인생을 저렇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하며 대중들이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해 보였지만 저는 잠간 보는 동안에도 왠지 모르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갖고 내내 시청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도 모르게 목사라는 위치와 신분에 너무 많이 규격화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방향성인지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솔직히 말하면 헷갈립니다.

그래서 목회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하나님의 지혜가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탁구장에서 시합을 가질 때마다 머리는 아직도 10-20대인데 몸은 5학년 3반인 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일들이 제 앞에서 일어납니다.

“선배 목사님들은 어떻게 70세까지 목회하셨지?”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