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휴대폰이 생활화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아내가 저에게 신경이 곤두서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 놈의 전화기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도 그럴 것이 계속해서 전화기 찾아 삼만 리를 하고 있다가 이제는 짜증도 나고 힘도 들고 해서 저에게 던진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씨름을 하다가 전화기 수화기를 찾은 곳이 냉장고 박스였습니다.
그 때는 아내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젊었을 때였기에 저에게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당신 아직 그럴 나이 아직 아니야. 정신 줄을 놓지 말고 살아.’
교회 어르신들에게 못내 죄송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당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함을 요즈음 부쩍 느낍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양복을 갈아입고 일찍 본당으로 내려왔습니다.
준비 기도를 마치고 강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옷매무새를 다시 고쳐 입는데 뭔가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상의와 하복이 따로따로 놀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양복 톤이나 보니 이 양복이 맞을 것이야 하고 입고 나왔는데 전혀 다른 양복을 입고 나온 것입니다.
부랴부랴 사택으로 올라가 맞는 양복을 입고 내려와 예배를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사택이 지척이라 가능했던 일이지 만에 하나 사택이 떨어져 있으면 그날 촌티를 주룩주룩 내며 멋쩍게 예배를 인도할 뻔 했습니다.
지난 겨울, 아들 교회에 가서 설교를 섬길 때 이런 똑같은 불상사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아내에게 얼마나 지청구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말 그대로 촌 동네에서 촌티를 물씬 풍기는 목사가 되어 아들이 섬기는 다른 교회 지체들과 만나는 창피(?)함을 당했고 아내가 내내 저를 째려보는 핍박을 당했습니다.
나이 탓을 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다는 것을 저도 동의합니다.
아직은 이럴 나이는 아닌데…….
요즈음 계속 의도적으로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하는 멘트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아내에게 했던 말입니다.
‘정신줄을 놓지 말자.’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집중력에 있어서 젊은이들과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바로 감각이 떨어지는 차이입니다.
그래서 마치 기도하듯 반복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정신을 바짝 차리기입니다.
힘이 들고 버거워도 이 훈련은 지속해야 할 듯합니다.
이유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실수의 횟수가 다 많아질 테니 말입니다.
상의를 갈아입으려 집으로 들어온 저에게 아내가 질세라 한 마디를 던집니다.
“왜, 콤비도 어울리는데 그냥 단 위에 서시지 그래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정말로 정신이 흐릿해져서 아내가 끓여놓은 곰국으로 밥 챙겨 먹는 신세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옛날이여. 왕년에는 스마트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