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사람들이 거리에 별로 없었다.
제천의 특성상 봄의 짧음과 여름의 김 때문인지 부쩍 날씨가 더워졌기에 사람들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리라.
한 남루한 여인이 지나간다.
전도지를 주면서 여인에게 백지 전도를 하는 여집사님의 모습이 진지하다.
손자벌이 되는 청년에게 전도를 주며 허리를 숙이는 팔십 장로님의 모습에서 빛이 난다.
이제는 중년의 티가 제법 보이는 아내가 환한 웃음으로 한 젊은 처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전도지를 전한다.
“이랴 뷔페 옆에 있는 세인교회에서 나왔어요.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젊은 여집사님 둘이 쟁반에 커피를 올려놓고 거리에 있는 가게들의 문을 연다.
아마도 따뜻한 커피의 향기에 예수의 사랑을 담아 전하리라.
나이가 지긋한 권사님이 농협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 중년의 남자에게 전도지를 전하는 데는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하루가 되시라고 인사를 하는 속마음이야 오죽하랴.
퇴행성관절염으로 고통을 받고 계신 노권사님은 당신의 몸 하나를 건사하기도 벅찬데 연신 커피를 탄다.
특별히 감사한 것을 교회 지체들 중에 젊은 교우들이 전도 사역에 함께 함이 목사로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도 질세라 큰소리로 외친다.
“우리 세인 교회가 더욱 여러분들을 겸손하게 잘 섬기겠습니다. 제천 시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우리 세인교회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납니다.”
그런데 이런 전도용 멘트보다 더 가슴 떨리게 전하는 것이 있다.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구주이십니다. 그 분만의 우리들의 인생의 해답이십니다.”
개척 이후 4년 동안 교회의 지체들이 거리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노방전도를 통하여 결실을 맺는 자는 드물다.
그러나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의기소침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전도하지 않는 세대이기에 더 전도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역이 영적 부담이 있지만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의 심장을 멎게 한 사랑의 주님을 내 입술로 대중들에게 전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현대의 교회 안에 있다.
그들이 전도하기 싫어함의 이유는 아주 논리적이다.
효율성과 시대적인 감각에 노방전도는 맞지 않는다는 뭐 그런 류의 접근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냥 웃고 대응하지 않는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도 가끔은 말 같지 않은 종교인들의 공격형 질문에 침묵하신 것을 배웠나 보다.
오늘날 똑똑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눈물겨워 그 사랑을 전하고 있는 심장이 뜨거운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경성한다.
주님은 당신의 사랑에 눈이 멀어 사랑의 노래를 입으로 증거하기를 원하는 성실한 사람들을 찾고 계신 것을 알기에 매 주 화요일, 나는 그리고 함께 그 뜻을 잇기를 원하는 지체들과 제천에 아직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120,000명의 아담들을 향하여 나아간다.
내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이 행복한 사역을 빼앗기지 않으리.
오늘도 새벽에 어김없이 기도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 영광을 인정하는 물결이 제천에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