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 학부 과정 4학년 때 예배학을 교양 필수 과목으로 이수했습니다. 그러니까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교수님께서 리포트를 하나 제시하셨는데 한국에 있는 굴지의 교회 중 하나를 찾아가서 예배를 스케치하고 느낀 점을 보고하는 그런 과제였습니다. 교단을 초월하여 신학생 시절에 타 교회를 탐방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제가 찾은 교회가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이자 모교회도 같은 정동제일 감리교회였습니다. 한국에 세워진 감리교회의 첫 번째 교회를 찾아 탐방하는 것이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엔틱(antique) 했던 교회 예배당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교육 전도사 사역을 할 때였기에 주일 예배 탐방이 불가능해서 사역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 허락을 받고 수요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동제일 감리교회는 한국교회의 유명한 목회자였던 이재은 목사께서 시무할 때였기에 교회로 볼 때 전성기의 시기였습니다. 주보에 기록된 주일 예배 참석 인원이 약 2,000여명이었는데 서울에 가장 한 복판에 그리고 감리교회 전통에 있어서 가장 주목받는 정통성이 있는 교회였기에 누가 보더라도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예배 탐방을 위해 참석한 수요일 저녁예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예배당에 들어서는 데 나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예배 참석 인원 때문이었습니다. 약 200여명 정도가 앉아 예배가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왠지 모르지만 이름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부목사가 인도하는 예배의 분위기는 그래서 그런지 냉랭했습니다. 앉아 있는 교우들은 거의 대부분이 노쇠한 지체들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어딘지 모르게 저에게 다가온 느낌은 ‘예배 때우기’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기대하고 간 교회에 예배 탐방을 실망스럽게 마치고 나오면서 예배를 인도하신 부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예배 탐방의 목적을 말씀드리자 교역자실로 인도하신 부목사께서 전해 준 한 마디가 벌써 23년이 지난 일이지만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감리교 모교회의 수요예배는 예배드리기가 아니라 예배 때우기예요. 서울 인텔리 크리스천들이 모이는 교회의 자화상이고 한국교회 앞날의 그림자이기도 하지요.” 불행히도 23년 전에 한 교회를 섬기던 부목사의 예언적인 탄식이 적중하는 비극이 한국교회 2012년의 자화상이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오전 11시에만 드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신자가 많아도 주일 오전 예배는 11시 딱 한 번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세련된 신학자들이 산재해 있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강력한 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예배자들은 단 한 번만 드려지는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든 개인의 시간을 포기하라는 의미였지요. 이 지론은 주일 저녁예배도 수요예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신학적인 고집을 주일 오후 예배로, 수요 오전 예배로 성도들의 입맛에 맞게 변질시키면서 한국교회는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에서 목회를 하는 경우에는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와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저 역시 한국교회를 나약한 교회로 만들어버린 똑같은 공범자로 목회를 해 왔습니다. 믿음의 야성, 영적인 고집, 하나님을 향한 무모함 등의 붙들어야 할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의 유산들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렸던 것이지요. 지난 수요일, 비오는 날 저녁예배를 드리면서 공범의 죄를 범한 그 대가를 이 못난 목사도 똑똑히 당하는 비극을 맛보았습니다. 신자들의 뇌리 속에서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수요 저녁 예배를 보면서 하나님께 뚝뚝 떨어지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수요예배는 과연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부흥회가 열리면 상투적인 부흥사 목사들이 행했던 농담이 오늘따라 헛웃음을 짓게 합니다.
“주님은 비오는 날, 눈 오는 날, 저녁예배 시간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