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서재 입구 너머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이 온통 잿빛입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기상 캐스터의 용어대로 시간당 내리는 비가 폭우가 되어 쏟아지고 있는 오후 늦은 시간입니다. 빗소리가 너무 커 교회를 둘러보았습니다. 신축 건물이다 보니 장마 기간 동안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하자들을 발견될까 하는 마음 때문에. 손집사님 말대로 금년 장마를 지내고 보면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미진한 부분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둘러보았는데 워낙 많은 양의 비가 내려서 그런지 창문틀에서 흘러들어오는 빗물 이외에는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 다행입니다. 지난 두 달 여 동안 극심한 가뭄으로 우리네 마음들이 타들어갔습니다. 가뭄이 극에 달했을 때 교회 뒤 정원이 메말라 수돗물을 연결하여 잔디와 나무들에 물을 주면서도 왠지 모르게 이렇게 물을 주어도 되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웠습니다. 지난 번 일차로 내린 비가 올 때 그렇게 반가운 비는 정말로 50평생 처음이었는데 이번에 두 번째로 내리는 이 비는 전국을 아프게 한 가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비라 하여 더 반가운 것 같습니다. 해갈은 물론이고 이제는 비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비라는 뉴스 보도를 들으면서 사람 마음이 이리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년에 1월에 호주의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블루마운틴에 대규모 산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불은 섭씨 38도가 되는 고온 날씨와 건조한 바람 때문에 진화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호주 당국이 다만 할 수 있었던 것은 맞불을 놓아 더 이상 산불이 번지지 않게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은 노도와 같이 번져 50만 헥타르를 불태웠고 가옥은 170채가 전소되었으며 더 많은 피해를 입일 기세로 번져나갔습니다. 청정 국가 호주로서는 엄청난 재난이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천재지변 앞에 호주 당국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산불이 한 순간에 기적처럼 진화되었습니다. 산불로 잿더미가 되고 있는 블루 마운틴 지역에 내린 불과 40mm의 비가 화마를 잠재운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재앙을 불과 40mm의 비가 내리자 비극이 멈추게 된 것이지요. 6월 동안 기상 이변으로 통칭되는 고통의 몫으로 바짝바짝 타들어간 대한민국 산하, 104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 4대강 공사 탓이다, 아니다의 공방에 들어가 있는 전무한 낙동강 녹조 현상, 무분별한 해안구조물의 설치와 모래 채취로 인해 경포대 해안의 백사장이 심하게 침식되어 그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전에 없이 훼손되었다는 보도 등은 말 할 것도 없이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인재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불과 40mm의 비로 인해 남반부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블루 마운틴은 위기에서 벗어나 살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잘 것이 없는 것이 인간인데 우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하나님 주신 자연을 마음껏 훼손하는 중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서재에서 보이는 잿빛 하늘이 그래서 반가운 비를 주고 있지만 마음을 우울하게 합니다. “대지는 나를 우주와 생명의 리듬과 이어준다. 흙은 나에게 인내를 가르쳐 준다. 흙에서 하는 일은 언제나 적당한 시기가 있다. 그것은 해를 지나며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는 일이다.” 프랑스의 농부 철학자인 피에르 라비의 이 자연 예찬의 갈파가 잿빛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더욱 진하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 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