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누가복음 10:38-42절을 진솔하게 묵상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한 번 즈음은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베다니에서 살고 있었던 나사로의 누이들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교훈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저는 지난 주간에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특별히 주목한 구절에 필이 꽂혔습니다.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충고하신 구절이지요.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2)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시대에 생존하고 있는 최고의 본질적 복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존 파이퍼목사는‘하나님을 기뻐하라’책에서 초대 교부신학자이자 우리에게 참회록으로 잘 알려진 성 어거스틴의 한 어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모든 사람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공교롭게 지난 주간, 위에 소개한 묵상한 말씀과 읽고 있는 책을 통해서 분명히 막혀 있는 가슴이 뻥 뚫어지는 주님과 영적 소통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좋은 것을 택하였던 마리아, 행복함을 위한 신앙생활’
이제 이것을 위해 더 달려가야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결의(?)를 다지며 기도하는 어간 그 영적인 기쁨은 솟구쳐 오를 것 같았습니다.
크로스웨이 4기로 사역하면서 부쩍 많이 자란 현아가 지난 주간, 4번째의 독서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이번에 4기생들이 읽고 있는 책은 종이 거친 호흡을 삼켜가며 적지 않은 흥분으로 읽었던 존 스토트 목사의 쓴 기독교의 보물과도 같은 책인‘기독교의 기본진리’입니다. 보내온 현아의 독서 보고서를 읽다가 종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현아가 존 스토트의 한 일갈을 통쾌하게 적용시켰던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의지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한다.”
현아의 적용을 들어보실까요?
“내 기분과 내 영성이 함께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 변화는 영적 상태와 상관없다. 내가 지난달에 가진 슬럼프는 내가 주님을 찾지 아니한 결과였다. 나는 지난 달에 영적으로 회복을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기도로 주님을 맞이하는 자에게는 슬럼프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목사가 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아십니까? 가르치고 있는 제자가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는 그 행복을 말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교회를 공격하는 봇물들이 터지고 있습니다. 그와 맞물려 이것이 웬 떡인가? 하고 부화뇌동하는 부류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우들 중에 그들만의 잔치와 노래와는 상관이 없이 성장의 기쁨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좋은 편’을 선택한 것을 보면서 영적 쾌재(?)를 부르는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요즈음 세인교회 대세는 현아인 것이 분명합니다. 행복한 목사의 촌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