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찬양하기 : 마라나타
2. 큐티본문 : 느헤미야 9:1-38
3. 큐티날짜 : 2011년 9월 19일
4. 말씀요약
느헤미야는 평신도 사역자의 한계를 느끼고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를 초청하여 수문 앞 광장에서 7월 1일에 부흥회를 열었다. 이 부흥회를 통하여 잊고 있었고, 잠자고 있었던 유다 신앙공동체의 영성을 깨우는데 성공했다. 부흥회를 마친 뒤, 7월 10일에는 대 속죄일로 정하여 백성들의 집단적 참회를 통해 유다 신앙공동체의 회복을 진두지휘했고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동안은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여겨지는 초막절을 지키도록 지도했다. 이렇게 수문 앞 광장에서의 부흥회를 통해 시작된 일련의 유다 신앙공동체의 ‘대각성 성회’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늘 본문은 승리의 초막절 사역이 끝난 뒤 2일이 지난 7월 24일이 시간적 배경이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유다 신앙공동체는 영적 승리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본문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모든 각성 성회의 일정이 끝나고 2일이 지나 본연의 일상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 이번에는 유다 회중들 중에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한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다시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수문 앞 광장에서의 영적 감동을 잊지 못하고 다시 모여들기 시작하여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 것을 다시 결의하기에 이른다.(1-3절) 평신도들의 영적 각성을 지켜보던 성직의 계층에 있었던 레위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신앙적 결단에 고무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또 다른 영적 승리의 전이를 본문은 증언한다.(4-5절) 레위지파 사람들이 드렸던 긴 기도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구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며(6-10절) 둘째는, 대화하시기를 원하시며 말씀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고(11-14절),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들을 성령님을 주시면서 까지 우리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15-38절)
5. 나에게 주신 말씀과 적용
1) 은혜는 부정적인 상황을 초토화시킨다. (1절)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요약을 통해 앞서 주지한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에서의 은혜를 경험한 뒤 초막절을 지키며 받은 은혜를 말씀에 비추어 잃어버렸던 말씀을 다시 찾고 실천하였다. 유다 신앙공동체의 지체들은 이제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일상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공동체의 지체들 중 평신도들이 생업에 돌아갔다가 이틀 만에 다시 은혜를 받은 감동의 자리(수문 앞 광장으로 추측됨)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또 그 은혜를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 다음의 구절이다. 그들이 모인 장소의 열악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티끌을 무릅쓰며’이다. 금식이라는 육체적인 한계에 대한 인내와 동시에 베옷을 입은 죄인의 모습까지 겸하여 생각하면 그들의 상태는 상당히 열악하고 부정적인 환경이었을 것이 자명하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을 공격한 것은 먼지로 뒤덮인 주변 환경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3중고의 고통을 안고 있었다는 말이다. 환경이 최악의 상태였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자리에 다시 모였고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이 구절을 만날 때마다 뜨거운 감동이 솟구쳐 오른다. 그것은 은혜 받은 자들만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야성(野性) 때문이다. 은혜 받은 자는 부정적인 환경에 굴하지 않는다. 은혜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긍정의 바이러스이다. 나는 요즈음에 기도하는 시간에 날마다 드리는 기도가 있다.
‘하나님,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자가 아닌 유익이 안 되어도 순종하고 헌신하는 종과 같은 마인드를 가진 일군을 보내 주옵소서.’
정말로 놓치지 않고 기도하는 제목 중에 하나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티끌을 뒤집어쓰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사모하기 위해 환경에 굴하지 않고 다시 모여 기도와 금식으로 통회하고 자복하는 본문의 사역자들이.
2) 하나님의 천연기념물 (2절)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자복하던 유다 신앙공동체의 평신도 지체들이 모여서 결의한 내용이 적지 않게 나를 감동시켰다.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선민으로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의는 사뭇 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시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이방사람들과의 결혼과 연합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공동체 지체들의 결단은 영적인 매춘을 하지 않겠다는 결의이기에 오늘을 사는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을 주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가? 나는 정말로 세속적인 어떤 유혹과 터치에 굴하지 않는 사역자인가를 되새김질 해보는 레마가 2절의 본문 큐티였다.
요즈음 세속적인 매춘이 횡행하는 것은 그리 놀라만한 일이 아니다.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꼭 성적인 매춘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 영적인 매춘행위는 눈만 돌리면 보이는 형국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이 보시는 천연기념물로 살아가는 순결한 영혼을 소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하나님과 만나는 그 날 하나님의 천연 기념물로 인정받고 싶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그렇게 살고 싶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천연기념물로.
3) 담임목사를 감동시켜라 (3-4절)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감동이다. 은혜가 그리워 다시 찾은 그 자리에 모인 평신도 사역자들이 행한 구체적 사역의 기록이다. 유다 신앙공동체는 하루를 밤과 낮으로 4등분함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이 구분을 근거로 말한다면 낮 사분지 일은 오전 6-9시가 되고 또 다른 사분지 일은 9시-정오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장에 모인 이들이 무려 6시간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읽고, 또 참회와 예배로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된다. 6시간 동안 이어지는 평신도만의 천국 잔치가 펼쳐졌다는 말이다. 글로 기록되어 있지만 깊이 묵상하면 이 날의 감동이 전해져 온다. 목회를 하는 목사로서 이 구절에서 얻는 색다르고 짜릿한 감동이 있었다. 평신도들이 펼치는 이 은혜의 잔치를 레위 지파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놀라운 것은 이 은혜가 성직의 사명을 감당하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 결과 레위 사람들이 함께 그 은혜의 자리에 동참하여 기도하는 대열이 합류하게 되었다. 감동 받고 응원하게 된 것이다. 구절을 묵상하다가 상상의 나래를 폈다. 우리 세인지체들 가운데 담임목사를 감동시키는 영적인 영향력의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강덕 목사가 날마다 오늘은 아무개를 통하여 영적 감동의 기뻐하고, 내일은 아무개 때문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또 다음 날은 아무개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들고 하는 연속적인 은혜의 물결이 우리 군사 1기들 가운데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4) 행복, 행복하여라 (9-10절, 13-14절, 20-22절)
① 9-10절“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교만하게 행함을 아셨음이라 주께서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② 13-14절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③ 20-22절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위의 구절은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의 전 구절(5절 후반절-38절) 중에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을 나타내 주는 몇 구절만 발췌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속성을 파악한다는 것이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하나님께서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제시하신 몇 가지만을 겸비하는 마음을 갖고 나누자면 제일 먼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구원자라는 속성을 갖고 계신다는 점이다. 성경의 많은 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직접 대적들을 물리쳐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다. 바로와 그의 무리들을 물리쳐주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먼저 기억해야 할 은혜이다. 언제나 구원자로 우리들에게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둘째는 구원해 주신 당신의 백성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교제 방법이 무엇인가? 대화이다. 하나님은 항상 자녀 된 우리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반문하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나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이해한다. 한 사람의 반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안다. 아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어느 때에는 그것 때문에 눈물짓는다. 무엇인지 아는가? 하나님이 나 같은 것과 말씀하고 계시고 또 말씀하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 나를 눈물짓게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 하시는 것을 들으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순결함이다. 이것이 없이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 근래 들어 나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아버지, 아무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환한 모습으로 말씀하신다. “이놈아, 그러니까 내가 너 옆에 있잖아!”
아는가? 이 사랑의 대화가 얼마나 눈물짓게 하는 감격인지를. 마지막 또 하나의 하나님 속성은 선한 영을 주신다는 것이다. 선한 영이 무엇일까? 말 할 것도 없이 성령님이시다. 하나님께 우리들이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다. 그 어떤 것 하나 감사의 조건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나는 그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중의 최고의 감사 조건은 나에게 성령을 날마다 충만하게 공급하시는 은혜이다. 끔찍한 상상을 한다. 나에게 1분이라도, 아니 1초라도 성령이 안 계신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 말이다. 과장이 아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무한 감사하다. 성령님이 내 안에 귀하게 살아계시기 때문에 말이다. 목사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는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 너무 행복하다. 요즈음 정말로 성령님의 은혜로 주님만 보이기 때문이다. 큐티 용 멘트를 목사의 자존감으로 1기들에게 하겠는가? 군사 1기들과 함께 하는 사역에서 이 간증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터질 것 같은 심장으로 노래해 본다.
“주님, 사랑해요. 내 온 맘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
6. 기도
나의 전부이신 하나님.
느헤미야 9장을 통해 받은 은혜로 인해 지금 종은 눈물을 흘립니다. 이론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종은 지금 사랑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원하신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
종에게 주신 그 아낌없으신 사랑의 밀어를 우리 군사 1기들 전부에게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