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찬양하기 : 용서하소서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2. 큐티본문 : 느헤미야 9:38-10:39
3. 큐티날짜 : 2011년 9월 26일
4. 말씀요약
느헤미야 9장은 수문 앞 부흥회 이후 또 다른 부흥을 유다 신앙공동체가 경험했음을 보고하고 있다. 적어도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하나님께 순결을 다짐하고, 결코 제사 드림을 잊지 않는 성직자, 평신도가 될 것을 다짐하며 하나님께 결단의 기도를 드렸던 것을 9장에서 목도했다. 9장의 맨 마지막 절은 이 결단의 기도를 드린 뒤에 하나님께 이 약속을 잊지 않고 실천하겠다고 약속하는 인을 치는 것으로 마감한다. 이어지는 10장은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한 유다 신앙공동체 중에서 약속의 인을 친 자들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느헤미야와 부관이었던 시드기야를 필두로 제사장 그룹 21명(2-8절), 레위인 그룹 17명(9-13절), 그리고 나머지 유다 신앙공동체의 정치적인 리더 그룹이었던 우두머리들 44명(14-27절)의 인을 친 명단이 낱낱이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시 살 것을 결단한 인을 친 백성들의 결단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여 느헤미야 기자는 보고한다.
① 영적인 혼합주의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것임.(28-30절) ②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안식일과 안식년을 반드시 사수할 것임.(31절) ③ 첫 열매를 반드시 드릴 것임.(33-37절), ④ 십일조의 회복(38-39절)등이었다.
5. 나에게 주신 말씀과 적용
1) 불편한 진실 (1절)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1절에는 감동이 분명히 있다. 이 감동을 느끼려면 이미 묵상한 3장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던 느헤미야는 자신의 사역을 도와 성벽 재건에 동참한 동역자의 이름들을 3장에서 무려 75명이나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지루할 정도로 열거한 75명의 위대한 하나님 역사를 담부한 자들의 이름 중에는 느헤미야 당사자의 이름은 고의로 누락되어져 있다. 느헤미야가 그렇게 한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일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3장에서 누락시킨 느헤미야가 오늘 묵상한 10장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제일 첫 번째로 올려놓았다.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무엇인가? 10장은 3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3장은 영광을 받는 장이요, 10장은 영적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 불편한 장이다. 아주 불편한 부담의 장이란 말이다. 영적 혼음을 분연히 거부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에 생명을 걸고, 첫 열매와 십일조를 정확하게 하나님께 드리고 동시에 제사장의 몫으로 드려야 하는 물질적인 헌신까지 부담해야하는 불편한 장이다. 바로 이 장에서 이 일을 앞서서 실천하고 결의하며 인을 친 선두에 느헤미야가 우뚝 서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헌신의 결단에는 앞서가는 느헤미야 잔잔한 감동이다. 불편한 진실을 내가 감당하겠다는 느헤미야의 결의와 솔선수범이 강력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큐티하는 내내 느헤미야의 삶이 도전으로만 머무르지 말자를 골백번은 다짐했다. “나도 불편한 진실을 수용하는 목사가 되자.”를 결단 또 결단했다.
2) 이름 적힌 사람들. (1-27절)
1-2절까지 느헤미야를 포함하여 84명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이름은 자랑스러운 이름들이다. 왜? 불편한 진실게임에 다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나타나 영광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꽤나 불편한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장(場))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로 기억된다. 담임선생님이 칠판에 하얀 분필로 모서리에 이렇게 쓰신 적이 있다.
서기 이강덕, 그리고 그 옆에 떠든 사람 *** 라고.
어린 마음에 그 때 얼마나 뻐기고 싶었든지 모른다. 나는 선택된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떠든 아이들보다는 더 훌륭한 모범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착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 때 어린 마음에 칠판에 적힌 내 이름을 보면서 선민의식(?)을 가졌으니 목사가 될 소양이 있었나보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유치해서 얼굴이 벌개 진다. 오늘 10장에 기록된 84명의 이름들을 읽다가 초등하교 시절의 에피소드가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자리에 헌신과 결단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이 적혀 있는가? 하나님의 치부책에.
3. 누워서 침 뱉지 말자. (39절)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유다 신앙공동체의 84명의 지체들은 인을 쳤다. 하나님께 도장을 찍은 것이다. 앞서 보았던 4가지의 불편한 진실을 감당하기로 말이다. 39절 마지막 절을 묵상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구절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을 근거로 적용한다면 이들이 4가지의 약속을 무자비하게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 바로 하나님의 전(殿))을 버린 것이라는 말과 같다. 이 해석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하나님의 전을 폐허로 버려두는 삶이 영적인 혼음을 용인할 때며, 하나님께 제사로 승부를 걸지 않을 때이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할 때이며, 하나님께 가장 좋을 것을 빼앗을 때라는 말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삶이 바로 하나님의 전을 버리는 행위와 똑같다는 역설에 정신이 번쩍 든다. 누워서 침을 뱉어서야 되겠는가? 목사로서 하나님의 집이 황폐하도록 버려두는 것은 훗날 하나님께 가장 큰 징계를 받는 일이 될 것임을 다시 한 번 각인한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차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본문에서 84명의 유다 신앙공동체의 지체들이 인을 치며 결단한 그 결단이 오늘 또한 이강덕 목사의 결단이 되어야 하겠다고 가슴에 새겨본다.
6. 기도
날마다 알게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날마다 좋은 것으로 먹이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강덕목사가 느헤미야 10장의 느헤미야이게 하시고 우리 세인지체들이 84명의 본문에 기록된 이름 적힌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