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평창2024-03-27 12:18
작성자 Level 10

평창

 

‘2전 3기’라는 신조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제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말이 되었습니다. 자크 로게 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이 호명한‘평창’이라는 외마디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2전 3기의 기쁨을 알려준 쾌거의 외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장소로 확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유치 장소 발표가 있던 날 대한민국 4명 중에 한 명이 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 중계방송을 보았다고 하니까 얼마나 이번 평창에 대한 올림픽 유치의 국민적 열망이 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번 쾌거를 이루어낸 모든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평창(Pyeongchang)’

정말로 듣고 싶었던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라는 직업의식이 발동을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창이 불러지는 그 날 또 다른 감회가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익숙한 성경 말씀이 한 구절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한 외침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로마서 14:10)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심판대에 서는 날 하나님이 제일 먼저 행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으로 인도할 당신의 백성들의 이름을 호명하신다는 것입니다. 옛날 학창시절 출석부에 있는 이름을 선생님들이 호명할 때처럼 하나님은 그 날 내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이강득, 이광득, 이광덕, 이강탁, 등등의 이름이 불릴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저에게 있어서 정말로 불려야 할 중요한 이름은 다름 아닌‘이강덕’이 아니겠습니까? 비슷한 이름은 다 불렸는데 정작 내 이름만 없다면 그 때의 절망은 얼마나 기막힌 절망이겠습니까? 저는 그날 독일의 뮌헨 유치단을 보았습니다. 프랑스 안시의 유치단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평창이 호명될 때 우울하고 아쉬워하는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몇 몇 사람들은 패자로서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아쉽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평창이 그랬듯이 그들은 2022년을 내다보며 다시 도전하며 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도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는 그럴 수 없습니다. 시간이 오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주님께서 이름을 부르시는 자의 반열에 서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임을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의 이름을 반드시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부르실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5-16)

시편에서 시인도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편 91:14)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날을 향하여 지금의 과정을 기쁨으로 달립시다. 그날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