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찬양하기 : 찬송가 516장 - 옳은 길 따르라 승리의 길
2. 큐티본문 : 느헤미야 7:1-73
3. 큐티날짜 : 2011년 7월 4일
4. 말씀요약
거룩한 하나님의 성 사역이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막중한 사역을 내외적인 공격과 어려움들이 즐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마다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로 느헤미야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사역의 마지막 부분이었던 성벽의 문짝들까지도 완전하게 달고 사역을 마쳤다. 그토록 염원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사명은 이렇게 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공사를 완료한 이후를 기록한 본문 7장을 보면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제일 먼저 성벽을 재건한 뒤에 성벽과 성전을 위해 일할 성직자들을 성별하여 세우고 그 뒤를 이어 정치적인 치리자를 세웠고 동시에 예루살렘 성벽 문의 개폐의 룰을 엄격하게 세워 만약의 위기를 대비하였으며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집의 맞은편을 각자가 맡아 파수하도록 하는 치밀한 경계를 세웠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예루살렘 성벽방비의 프로젝트를 완성하여 시행한 느헤미야는 곧바로 유다 성읍에 도착한 백성들의 인구수를 상세하게 조사하는 사업에 착수한다. 이를 위하여 느헤미야는 바사 왕 고레스 원년이었던 BC 538 년에 유다로 돌아왔던 자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그 인원이 몇 명이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에 이른다. 느헤미야는 이 수고를 통하여 무려 70여년 (정확하게는 72년: 2차 포로귀환은 BC 457년, 3차 포로귀환 BC 444년) 이 지난 뒤의 상황이 70여 년 전의 상황과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파악하고 정확하게 성벽 재건 뒤의 영적 재정비에 나서는 것을 본문은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벽 재건을 완성하고 난 뒤에 이 엄청난 사역을 위해 물질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고 헌신한 사람들의 출처를 분명히 밝힘으로서 그들의 수고를 격려함으로 7장의 보고를 마무리한다.
5. 나에게 주신 말씀과 적용
1) 적어도 이랬기에 (4절)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목회를 하면서 나를 위시하여 목회하고 있는 모든 지체들과의 싸움(긍정적인 측면에서)이 무엇인가가 결국은 목회의 정체성임에 틀림이 없다. 이 말은 다른 말로 곱씹고 또 곱씹는 ‘성도의 우선순위’ 문제이다. 1차 포로에서 귀환한 42,360명이 성전을 재건을 하다가 2년 만에 바사 당국의 정치적인 압력으로 중단되었다. 분명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전 재건이 중단된 지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떤 의미에서 1차 포로귀환자들은 잘못이 없다. 정치적인 규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이 분노하셨다는 것이다. 그 분노의 끝이 80세 노령의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불러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전하라 명하셨다. 예루살렘 성읍에 돌아와 성전재건을 중단한 내 백성들의 모든 축복의 통로를 막아버리겠다고.(학 1:6-7, 9-11)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학개서를 제일 처음 만났을 때가 신학대학 시절 소예언서 연구를 통해서였다. 그 때 하나님의 행위가 못내 섭섭했다. 백성들이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는데 왜 하나님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셨을까? 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얼마나 얄팍한 풋내기 신학도의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이후 이것이 우선순위의 문제였음을 안 것은 한 참 뒤였다. 성전 재건의 중단에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본인들의 집을 판벽(잘 지은 것)하게 지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속상함의 시작을 알려주는 메시지가 학개서임을 후에 알게 되었다. 격세지감이다. 약 70년 전의 선배들은 이렇게 계산적이었는데 70년이 흐른 뒤의 후배들은 달랐다. 이번에는 정반대이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완성하는데 올인하다 보니 정작 본인들이 살아야 하는 가옥은 미처 짓지를 못했다. 목사인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일까? 왜 감격의 은혜가 꿈틀거리는 전율함이 느껴질까? 속물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나는 이들의 이러한 헌신과 계산하지 않는 영적인 삶의 뒤에 임하는 8장의 수문 앞 광장에서의 대부흥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 때문에 흥분한다. 지금 함께 큐티 학교 사역을 걷고 있는 군사 1기들이 정말로 이런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타오른다. 이강덕목사를 담임목사로 지명하여 함께 걷는 이 길에서 전무했던 부흥의 물결을 우리 군사 1기 지체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 옛날 새벽무릎이라는 책에서 지금은 참 유감이 된 전병욱목사가 쓴 에필로그에 기록된 글을 결코 잊지 못한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한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라고 찬양을 부르는 삼일의 젊은이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남루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의 옷깃을 붙들고 예수가 주님이라고 피를 토하며 전하는 자매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고 쓴 그의 고백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왜 전병욱 목사만 그래야 하는가? 나는 우리 세인 군사 1기가 나의 자랑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가옥은 미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2. 가짜는 진짜를 위해 탈락되어야 한다. (61-64절)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가 육백사십이 명이요 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불린 자라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느헤미야는 70여 년 전에 계보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때 귀환한 자들의 명단을 보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70여년이 지난 뒤의 예루살렘의 유다 백성들의 정체성 파악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무엇보다도 성직자 그룹의 분명한 구별이 필요했다. 그 이유는 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는 삶의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느헤미야는 무엇보다도 성벽 재건 뒤에 공동체의 승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으로의 회귀라고 확신했기에 유다 족속의 족보(계보)가 절실했다. 이런 이유로 인구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사 중 바르실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제사장의 정체성이 불투명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딸이었던 바르실래와 결혼하여 그것을 빙자로 거짓 제사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그에게 제사장 직을 박탈하여 제사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제재를 가했음을 7장은 보고한다. 2주 전 바른 교회 아카데미 충주 세미나에서 바른 교회 아카데미이사장으로 사역하고 있는 용인향상교회 정주채 목사께서 세미나 강사로 나와 한국교회의 타락의 중요한 요소로 난립한 무인가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목사들로 인한 일탈이라고 지적을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있어서 100%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견 동의한다. 자격 미달의 가짜들로 인하여 진짜가 가려지는 세태가 오늘의 시대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나를 비롯한 우리 군사 1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나는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아이든 토저가 그의 책에서 갈파한 진짜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의 구별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추천도서로 권하고 싶다.
기도
항상 옳은 길을 가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7장 큐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진리로 이끌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내 가옥은 미처 짓지 못하는 불편함에 도리어 전율하는 은혜를 느끼는 종과 군사 1기 지체들이 되게 하옵소서. 동시에 부족하지만 종은 하나님을 위한 진짜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