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 (창세기 백 마흔네 번째 강해) 본문: 창세기 50:1-14 제목: 어떤 장례식 서론) 우리는 2020년 11월 4일 첫 번째 강해를 시작으로 오늘까지 무려 42개월 동안 수요 저녁 예배를 통해 창세기 여행을 부지런히 감당해 왔습니다. 결국 약 180주를 넘나드는 수요일 예배를 통해 부 교역자가 설교한 시간과 특별 집회로 인해 다른 설교로 대체된 약 40번의 예배를 제외한 144번에 걸친 창세기 강해를 경험한 끝에 이제 지난주 수요일에 49장까지 강해를 마쳤고 오늘은 드디어 50장으로 접어드는 날입니다. 앞으로 3주면 창세기 강해를 완료하게 될 것입니다. 잘 보폭 맞추며 창세기 공부에 동참하며 잘 걸어온 세인 지체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 야곱의 장례식이 보고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애굽의 고센 땅이 아닌, 가나안 에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는 유언과 자식들에게 강복과 경성의 메시지를 남긴 뒤에 별세하였음을 지난 143번째 강해를 통해 살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유언대로 요셉을 비롯한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받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절은 야곱이 죽자, 요셉과 애굽인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애곡하는 내용이고, 4〜6절은 요셉의 부하를 보내 바로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에 매장할 것을 청원한 내용입니다. 7〜9절은 야곱의 시신을 운구하는 장례 행렬을 설명하고 있으며, 10〜11절은 아벨미스라임의 유래를 알려주고 있고, 12〜14절은 아버지의 시신을 막벨라에 매장하고 다시 애굽으로 귀환했음을 보고하는 것으로 본 단락이 마무리됩니다. 본문을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야곱의 시신에 약품을 처리하고 가나안으로 운구하는 준비를 하는 데 약 40일이 소요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동시에 애굽 사람들도 야곱의 죽음에 대해서 7일간 슬퍼했다고 전언해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가나안을 방문해야 했기에 윤허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요청은 요셉이 측근을 통해 바로에게 부탁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4-5절) 직접 하지 못한 것은 요셉이 아버지의 시체와 함께 있기에 부정함을 바로에게 보이지 않기 위한 충정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충정을 이해한 바로는 곧바로 애굽의 정사를 맡고 있는 요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즉각 허락한 것을 보면 바로가 요셉을 얼마나 총애하고 있는지 알게 해줍니다. (6절) 바로의 윤허를 받은 요셉은 드디어 아버지 야곱의 장례 행렬을 만들고 길고 긴 장례 여정을 떠납니다. 7〜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구절만 놓고 보더라도 장례 행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동행했습니다.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원로들도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모를 도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바로는 철갑 부대와 기병 병사들로 하여금 호위하게 했습니다. 이방인의 죽음에 대해 바로가 이렇게 배려한 것은 엄청난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압권은 10〜11절입니다.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드디어 장례 행렬이 애굽 땅에서 가나안땅으로 들어섰습니다. 같이 장례 행렬에 동행한 애굽인들이 가나안 땅인 아닷 타작마당에 들어서자, 요셉이 7일을 대성통곡하며 슬피 우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함께 동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 인이 가나안인의 아픔에 동참하여 애통하는 광경을 아닷 사람들이 충격적으로 본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일을 목도한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이 울었던 땅, 아닷을 ‘아벨미스라임’이라고 불렀는데 번역하면 ‘애굽 사람들의 애통’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한 의미를 부여하며 예의를 갖춘 셈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물론, 애굽 사람들의 애통까지 받은 야곱의 장례 행렬은 막벨라 굴에 도착했습니다. 본문 마지막 구절을 나누어 봅시다. 13~14절입니다.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결국 야곱은 자신의 유언대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묻힌 땅에 묻혀 안식의 장에 들어갔음을 보고합니다. 단락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이후,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한 뒤에, 다시 애굽으로 복귀했다고 말입니다. 이상 144번째 창세기 강해를 통해 함께 나눌 수 있는 교훈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 나의 장례식은 어떤 장례식이 될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세밀하게 반추하며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야곱의 장례식은 승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물론 인정할 것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전 인생 여정을 경주하면서 젊은 날, 좌충우돌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조금씩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조각되었던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지난 강해를 통해 살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막벨라 굴에 매장하라고 당부까지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야곱 스스로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했고, 성장해 갔다는 의미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야곱은 믿음의 계대를 잇는데 승리했기 때문에 그의 장례식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야곱의 말년이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라는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섰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믿음의 계대를 잘 이어받은 요셉으로 인해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은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장례식이 귀한 장례식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식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곱에게는 12남 1녀라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말년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요셉이라는 아들이 야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잇댐을 성공적으로 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장례식이 이토록 장엄하고, 많은 사람들의 애곡함과 동통함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들 요셉의 믿음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들의 신앙에 대해 소홀히 여기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대체로 이렇습니다. 자식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지금은 젋은 혈기에 한때의 감정으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여기지만 나이가 들면 돌아올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자기합리화하며 자위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다. 자식들의 신앙적 잇댐은 인간적인 정으로 유야무야(有耶無耶)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 교부신학자인 성 어거스틴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일탈하며 비뚤어져 가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던 어머니 모니카 있었기 때문임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걸작인 『참회록』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남겨 놓았는데 감동입니다. 오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이탈리아 오스티아에 거주할 때 열병으로 앓게 되면서 3개월 후에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니카의 나이 56세, 어거스틴의 나이 33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모니카는 평소에 자기가 죽으면 남편의 고향에 묻히기를 소원했는데 죽기 직전에 아들들에게 평소 소망과는 달리 이곳 오스티아에 묻어달라고 유언합니다. 어머니의 유언을 들은 어거스틴과 형 네비기우스가 왜 아버지의 고향이 아니냐고 묻자 모니카가 남긴 말은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회자될 정도의 신앙고백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몸이 어디 묻힌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공연히 그런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거라.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이 하나 있으니, 너희들이 어디를 가든지 주의 제단 앞에서 항상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내 모습을 기억하여라.” (어거스틴, 『참회록』, 생명의 말씀사, 150쪽) 여러분의 장례식장이 열리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나에 대해 신앙적으로 할 말을 남겨 놓는 인생을 사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호흡이 있는 동안 해야 할 마지막 미션입니다. 아주 가끔 디모데전서를 읽을 때, 가슴을 벅차게 하는 구절 때문에 은혜를 받곤 합니다. 디모데후서 1:3-5절을 만나 보십시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서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나는 기도하면서 그대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실제로, 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만—그대로 인해 하나님께, 곧 내 조상의 전통을 따라 내가 목숨을 다해 섬기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지난번에 있었던 눈물 어린 이별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대가 몹시 그립습니다. 나는 기쁘게 그대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자니, 그대의 진실한 믿음이 떠오르는군요. 그대의 믿음은 참으로 값진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에게서 어머니 유니게에게로 이어졌다가, 이제는 그대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바울의 뒤를 이어 초대 이방교회를 담당했던 디모데라는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은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제1대에 할머니로부터 제2대 어머니에게로 이어진 믿음의 계대가 제3대인 디모데에게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내 장례식 날이 열릴 때, 여러분의 자식이 여러분을 믿음의 감격으로 환송할 수 있는 내용물을 만드는 우리 모두의 삶의 과정을 엮어내는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저는 이제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감동적인 스토리를 소개함으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이재철 목사께서 쓴 『비전의 사람』 끝자락에 수록된 글입니다. 포르투갈 국민 여가수인 로드리게스 아말리아라는 여자가 죽었습니다. 그 여자가 어느 정도로 포르투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위대한 가수인가 하면 그녀의 죽음이 발표되는 순간에 포르투갈 내각이 사흘 동안 조의 기간을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조기를 달았습니다. 이 가수가 누군가 하면 ‘화도’(fado)라는 포르투갈 민속 음악을 세계 정상의 음악으로 끌어올린 사람이었습니다. 사흘 뒤 리스본 대성당에서 아말리아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장례식은 전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신부님의 미사 집전이 끝났습니다. 바로 제단 앞에 있었던 아말리아의 관을 6명의 운구 위원이 어깨에 멨습니다. 그리고 성당 출구를 향해 운구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전혀 뜻밖의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리스본 대성당 안에 있던 모든 조문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말리아의 관을 향해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운구 위원들이 대성당을 걸어 나갈 때까지 박수 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운구행렬이 출입문에 이르자 성당 밖에 있었던 카메라가 성당 앞을 비추었습니다. 정문이 열렸습니다. 운구 위원이 관을 메고 성당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역시 관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쳤습니다. 기마병의 호위 속에 장지를 향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대로 양쪽에 끝도 없이 줄지어 선 리스본 시민들도 어김없이 박수를 쳤습니다. 장의차가 자기 앞을 지나갈 때 리스본에 몰려든 인산인해의 수많은 시민들이 그녀에게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은 제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제 아이들에게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아빠와 엄마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몫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아빠와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향하는 날, 너희들이 아빠와 엄마의 삶에 대해 긍지를 느끼고 박수로 환송할 수 있도록 말이야. 너희들 역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무나. 너희들의 마지막 날에 너희 자식들도 너희들을 박수로 환송할 수 있게끔 말이다.”(이재철, 『비전의 사람들』, 홍성사, 141-142.) 이재철 목사의 이 글을 2001년에 읽었으니까 이제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은 2000년 3월 31일에 실시되었던 장신대 신대원 신앙사경회 마지믹 날에 이 목사께서 후배들에게 전한 설교 녹취의 글입니다. 후담을 들었는데 이 목사께서 이 설교를 전하자, 장신대 신대원 학생들이 일어나 함께 울었다는 전언을 들었습니다. 아마, 저 역시 그 자리에 있었으면 똑같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죽어서도 행복했던 여인, 로드리게스 아말리아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장례식입니다. 예외 없이 어느 날, 내 사진이 영정 안에 들어가 있고 나를 아는 지인들이 와서 고개를 숙이는 날이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감하게 이런 성찰을 해야 합니다. 내 장례식장에 찾아와 나의 죽음을 기리는 이들이 나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삶을 나는 살았는가? 내 장례가 열리는 날, 내 자식들이 나의 죽음 앞에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남기는 삶을 살았는가? 냉정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았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고,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하고 생각되면 지금부터라도 그런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세인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지체들의 장례식이 부흥회 장소가 되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친양하고 기도합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그 거룩한 곳 아버지 집/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간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이 몸이 상할지라도/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서/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주께서 아시리 빈들이나 사막에서/이 몸이 곤할지라도/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날 지켜 주시리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주 복음 전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