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4:10-27
제목: 여호와 이레
오늘 본문 이해에 앞서 24:7절 말씀을 먼저 읽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이 엘리에셀로 추측되는 늙은 종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면서 건넨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돋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며느릿감을 구해오라는 하명을 늙은 종에게 내리면서 그에게 확신을 하나 던집니다.
사자가 너보다 먼저 밧단아람으로 갈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메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곳에서 하나님이 너를 위해 일하실 것이라는 위로요 격려였습니다.
이 격려와 위로를 받은 늙은 종은 가나안에서 밧단아람이라는 약 1,000km에 있는 먼 길을 향해 떠납니다.
본문 10-11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늙은 종에게 아브라함이 건넨 물건은 모든 좋은 것과 낙타 10마리였습니다.
낙타는 험악한 환경에서도 오래 살 수 있는 동물이었기에 밧단아람으로 가는 여정에 최적화 된 동물이었습니다.
동시에 무척이나 비싼 동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0마리나 늙은 종에게 주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엄청난 재력을 가진 자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며느릿감 구하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거리적으로 낙타를 이끌고 갔다면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비되었을 것인데 늙은 종은 무사히 나홀의 성에 도착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나홀은 아브라함의 동생입니다.
다시 말하면 늙은 종이 낙타들을 쉬게 하고 자신도 머문 땅이 주인인 아브라함의 친족이 살고 있는 땅임을 암시해 준 것입니다.
주인이 가라고 한 땅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 땅에 도착한 늙은 종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다.
12-14절을 나눕니다.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잘 짜인 각본대로 종은 야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단순했지만 명확했습니다.
순조롭게 자매를 만나게 해달라는 가도였습니다.
종이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설교를 시작하면서 나눈 7절에서 피력한 아브라함의 메시지를 종 역시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즉각적인 응답이 임합니다.
이어지는 15절을 읽겠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표준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이 구절을 번역했습니다.
“기도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다. 그의 아버지는 브두엘이고, 할머니는 밀가이다. 밀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로서, 아브라함에게는 제수뻘이 되는 사람이다.”
얼마큼 철저하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일단은 종은 아브라함이 요구한 조건에 부합하는 제 일의 요건을 갖춘 처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 확신이었습니다.
종이 기도한 내용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14절이 증언합니다.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종의 기도이자 청원이었습니다.
리브가를 만난 종은 곧바로 이 요구를 합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낯선 종의 이 청(請)을 기꺼이 수용합니다.
종이 요구한 청은 결코 쉬운 청이 아니었습니다.
송병현 교수의 해석을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종은 대단한 일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목마른 낙타에게 물을 주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낙타 한 마리가 한꺼번에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은 거의 100리터에 달한다. 종은 10마리의 낙타를 데리고 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의 낙타에게 물을 먹이려면 우물물 1톤을 길어야 한다. 1,000kg의 물을 긷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특별히 친절하고 심성이 착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종의 기도를 ‘매우 영악한 인격과 체력 테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엑스포지멘터리-창세기 주석, pp,420-421)
주석에 기초하여 적용한다면 리브가는 종이 기도한 내용 그대로를 다 충족한 여인이 된 셈입니다.
자기가 기도하고 주인인 아브라함이 생각한 것을 다 충족한 소녀가 리브가임을 확인한 늙은 종은 22절에서 마지막 사역을 행합니다.
리브가에게 물 값으로 엄청난 재물을 선물한 것입니다.
22절을 나누어 보십시다.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 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금 코걸이가 반 세겔이라고 했습니다.
무게로 말하면 5,5g 정도입니다.
금 손목 고리가 10세겔이라고 했습니다.
110g에 해당하는 무게인데 한 쌍이니 220g 이 되고 이 모두를 다 합치면 약 230g 정도의 금을 리브가에게 준 것입니다.
물 값으로는 터무니없이 엄청난 가격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유 없이 큰 선물을 준다는 것은 곧바로 청혼의 의미를 담는다는 뜻입니다.
이에 선물을 받은 리브가는 종에게 자기의 집에 묵을 것을 요청했고, 수락하면서 이 선물을 준 늙은 종은 자신이 왜 밧단아람까지 그 먼 길을 오게 된 지를 리브가에게 말해주는 것으로 오늘 본문은 마감됩니다.
본문 27절을 마지막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상의 본문 이해를 통해 오늘 우리는 중요한 은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만 정리해 보십시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네가 밧단아람으로 가면 하나님이 너를 위해 미리 일하신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을 고지해 주었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밧단아람에 도착한 종은 주인이 말한 일을 순적하게 이루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처음 만난 소녀가 있으면 그녀가 주인이 말한 처자이게 해달라고 중보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종이 있는 지역적 장소로 리브가가 나왔고, 더불어 그 리브가가 주인의 친족인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가 기도한 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리브가의 광경을 목도하면서 주인의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막대한 청혼 선물까지 그녀에게 주게 되었고, 결국 종은 리브가의 집으로 들어가 유숙하며 그녀의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음을 본문이 제시합니다.
창세기 기자가 무엇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위해 리브가를 만난 사건을 이처럼 소상하게 기술하였을까요?
※ 앞서 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증언하기 위해서 입니다.
10-11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여러분은 이 구절에서 무엇이 느끼십니까?
1,000km나 떨어진 낯선 땅에 도착한 늙은 종이 낙타를 무릎 꿇려 앉게 한 장소가 우물곁이었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시간은 저녁때라 했습니다.
이 저녁때는 여인들이 우물로 물을 길러 오는 시간임을 저자가 밝힙니다.
시공간을 종이 일부러 맞추었을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 일하심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철저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 시간, 그 공간에 밧단아람에 살고 있는 소녀들과 아낙들이 물 길으러 오는 것은 다반사였을 텐데 왜 그날 그 시간에 늙은 종에게 처음 보인 소녀가 리브가였을까요?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하심의 결과물입니다.
리브가는 생면부지의 늙은이가 주는 선물을 왜 마다하지 않고 받았을까요?
하나님이 먼저 앞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늙은 종은 소녀가 청하는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27절 중반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확약처럼 종을 앞서 일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정확하게 아브라함의 계산대로 일이 진행된 것입니다.
이렇게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찌 아브라함과 늙은 종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세인 교우들의 삶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은혜입니다.
이렇게 먼저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하고 있는 고전적인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창세기 45:4-5절을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드디어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 요셉이 형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한 말에서 전율하게 하는 감동이 보이십니까?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 애굽으로 보내신 이유는 우리 식구들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품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신명기 1:30-33절은 언제 읽어도 감동의 감동을 주는 구절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제가 성경 중에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뽑는 베스트 에스더 6:1절을 언제나 제시합니다.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았던 밤이 있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아하수에로는 왕궁 내시에게 역대 일기를 가져올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읽기 시작을 합니다.
왕이 읽은 일기에는 불과 5년 전에 있었던 자신을 모살하려던 반역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아하수에로는 5년 전의 역대일기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는 5년 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하나의 일이 왕에게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반 계획을 알려주었던 모르드개에 대한 대우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반역의 무리를 일망타진하게 도와준 모르드개를 어떻게 대접했는지에 대하여 왕이 궁금해진 것입니다.
당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부분을 에스더 6장의 바로 그 긴박한 상황에 왕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5년 전의 일을 왕이 신하에게 물어보니 아무런 대우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아하수에로는 드디어 자신에게 있어서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모르드개에게 늦었지만 상을 내리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날을 새운 아하수에로는 자신의 일을 긴급하게 시행하기 위해 마침 어전에 입궐해 있었던 하만을 부릅니다.
그리고 하만에게 모르드개에게 최대의 예를 갖추어 그에게 상을 내릴 것을 하명합니다.
이를 계기로 하만은 급전직하의 길로, 죽을 운명이었던 바사의 유다인들은 역전을 하게 됨을 에스더 6장이 보고합니다.
정말로 살 떨리게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에스더 6:1절 전반절)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았던 그 날 밤, 그에게 잠이 오지 않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전혀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잠이 오지 않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먼저 일하신 일이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며느릿감을 구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 그 방법대로 종이 순종하게 하신 것, 밧단아람에서 가장 적합한 시공간에서 리브가를 등장시키신 것,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앞서 일하신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대단히 고전적인 용어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시고 일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곧잘 이런 용어로 부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라고.
사랑하는 제천세인 교회 교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위해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위해 존재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부도옹의 정신으로 또 일어서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란 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 알찌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사랑합니다 내 아버지 찬양합니다 내 온 맘 다하여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