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성서 일과 묵상 엘리압과는 상대도 하지 말자.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50편, 사무엘상 17:19-32, 사도행전 5:17-26 꽃물 (말씀 새기기) 사무엘상 17:28-30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개역개정판) 다윗의 형 엘리압은 다윗이 사람들과 친근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고 성을 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것이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양 떼를 치는 네 일에나 신경 쓰지 않고서? 네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다 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서, 구경하려고 내려온 게 아니냐!”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저는 그저 물어본 것뿐입니다.” 다윗이 대답했다. 그는 형을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다. 대답은 전과 같았다. (유진 피터슨, 『메시지』, 사무엘상 17:28-30) 마중물 (말씀 묵상) 오늘 성서 일과를 꽤 많이 택해 설교했다. 그만큼 오늘 성서 일과는 내게 적지 않은 통찰을 하게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블레셋과 전투가 치열했을 때, 이새가 아들들의 안위가 궁금해 막내 다윗에게 형들이 먹을 음식을 챙겨 보냈다. 전쟁터에 가보았던 다윗은 아연실색했다. 블레셋과 일전을 앞둔 이스라엘 진영은 이미 패색이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골리앗이 준 위상이 너무 엄청나게 압도적 위협이었기에 기세에서 밀려 있었다. 다윗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능멸하는 모욕적 언사를 듣고 분노했다.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이 할례받은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언사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언사로 들렸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싸우러 나온 군사들에게 상황이 이 지경이 된 자초지종을 묻는 다윗을 보았던 장형 엘리압은 다윗의 행동을 퍼포먼스로 해석하고 혹독하게 나무랬다. 이런 큰형의 공격에 대해 다윗이 보인 반응이 언제나 목회자 서서 현장 사역을 감당했던 내게 큰 울림이자, 거울이 되어 비춰주기에 언제나 내겐 경종의 소리로 다가온다. 다윗은 큰형의 질타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느낀 영적 굴욕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며 전쟁의 상황에 대해 파악했다. 다윗이 큰형 엘리압에게 보인 태도를 표현한 이 단어가 굵직한 소리로 울린다. “돌아서서” 유진 피터슨은 이 단어를 이렇게 의역했다. “형을 의식하지 않고” 지난 시간의 목회 연륜 동안, 나는 엘리압과 싸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엘리압과 싸우는 것이 백해무익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왜 목사가 되었는가? 엘리압과 싸우기 위해서 목사가 된 게 아니다. 내가 치열하게 목회 현장에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골리앗이다. 교회 상황이 어찌 된 일인지, 엘리압과 싸우면 기진하고 탈진한다. 골리앗과는 싸워보지도 못할 정도로 이미 탈진이다. 이런 주객전도가 어디에 있나. 이것을 젊은 날, 너무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나는 결심했다. 엘리압이 공격할 때 뒤돌아서리라고. 반응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골리앗과 싸우기도 버겁고 시간이 없기에 전혀 쓸데없는 엘리압과 겨루는 힘겨루기는 일도 반응하지 않기로 말이다. 한국교회 안에 엘리압이 너무 많다. 그러기에 진짜 중요한 사역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그들이 만들다. 너무 극명한 사탄의 계교다. 이기는 방법은 흔들리지 않고 무서울 정도로 골리앗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이것 말고는 엘리압을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기에 다윗이 공격하는 큰형 엘리압에게서 돌아섰다는 메시지가 내게는 산소호흡기 같다. 나도 끝까지 그렇게 사역하련다. 내 영적 고집이다. 두레박 (질문) 엘리압인가? 골리앗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주님, 엘리압에게서 돌아서게 하소서. 그에게 붙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골리앗에게서 눈을 떼지 말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고군분투하는 다윗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허락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