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나는 천상 성결교회 목사다.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94편, 룻기 4:7-22, 누가복음 4:16-30, 시편 113편, 창세기 24:28-42 꽃물 (말씀 새기기) 누가복음 4:22, 28-29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눅 4:22)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눅 4:28-29) 마중물 (말씀 묵상) 성경을 묵상할 때마다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왜지?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서 밖으로 나와 설교할 때 외쳤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캐리그마였다. 설교를 듣던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자복하며 주께서 돌아왔다. 반면 스데반이 설교할 때 전했던 메시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캐리그마였다. 하지만 설교를 듣던 이들은 이를 갈았다. 결국, 그들은 스데반을 죽였다. 이렇게 극단의 차이를 보인 이유는 말씀을 듣는 이들의 자유의지의 결과물 때문인가? 나사렛에 가신 주께서 회당 공동체 있던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구속사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듣고 있던 어떤 이들은 은혜로운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예수께 마음을 열었다. 반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말씀을 들었던 또 어떤 이들은 이를 갈았다.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 결과, 예수를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주님을 내쳐 살해하려고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주 가끔은 이럴 때 결국 도착하는 귀결점이 예정이라는 교리적 결론이다. 그렇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이니까 그럴 수 있어! 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나는 예정론을 믿지 않는 목사다. 그래서 이런 본문을 만나면 치열해지려고 하는 것이 있다. 내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총으로 기울어지기를 기대하는 영적 준비다.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 들려지는 것은 준비된 영성이 있는 자에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기에 그렇다. 나는 나사렛에 있던 자들 중에 예수님의 말씀이 은혜롭게 들려졌던 이들처럼 그 반열에 서기를 소망한다. 물론, 이 소망은 예정이 아니라, 전적인 내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내 자유의지의 선택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쪽으로 기울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천상 성결교회 목사다. 두레박 (질문) 나는 어느 쪽에 기울어져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내 자유의지의 선택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쪽으로 기울게 하여 주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영적 민감성에 있어서 무뎌지지 않도록 민감한 날을 살아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오늘 저녁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감동이 임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