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7일 화요일 성서 일과 묵상 Homosexuality (동성애) 오늘의 성서 일과 골로새서 3:1-11 꽃물 (말씀 새기기)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차별을 하거나, 차별이 없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 성서 일과에서 분명한 답을 준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공간인 만유 안에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골로새 교회에 편지한 바울의 일견에 동의하고 지지한다. 고용주와 피 고용주,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남과 여, 흑인과 백인, 어린이와 어른, 화이트컬러와 블루컬러 등등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신 분임을 정면으로 도전하며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목사로 평생은 살아왔다. 성경이 지지하는 차별 금지에 대한 분명한 어조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내겐 숙제가 있다. “Homosexuality”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라는 선언에 대해 지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동성애를 주장하는 이들이 강력하게 성토하는 이런저런 주장과 논리들이 있지만 나는 아직 설득당하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근본주의자이기에 그렇다고 공격하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아니면 된다. 로마서에 기록된 동성애에 대한 시대적 정황, 또 그것이 의미하는 신학적 함의 등등 나는 그 배경에 따른 콘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의미를 모르지 않는다. 상황 윤리를 적용하며 동성애에 대한 옹호와 심지어 의학적인 차원에서 동성애에 대한 DNA 구조로 수용해야 한다는 지성적 접근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론과 설명이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다.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토설이 만유 안에 존재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도리어 역차별적 발언으로 들리는 것이 지금의 내 신학적 스펙트럼이다. 오늘 성서 일과에 들어 있는 차별 금지에 대한 성서적 구절이 동성애에 대해 아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레박 (질문) 역리를 반대한다는 것이 차별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자연적인 질서에 순응하라는 것이 공격받는 시대입니다. 이 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순리로 역리로 바꾸려는 것과는 투쟁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이 땅에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은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