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8일 목요일 성서 일과 묵상 “그 속에 생기가 없는 것”과 싸우자.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23편, 예레미야 10:1-16, 골로새서 1:15-23, 시편 89:20-37, 역대상 11:15-19 꽃물 (말씀 새기기) 예레미야 10:14-16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언젠가 이런 결심을 한 때가 있었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가능한 쓰지 않아보기 현대를 살아가는 이로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하지만 해보기로 마음먹고 시행했지만 흉내만 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가 사고의 틀을 바꾸어보기로 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 철학과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기계에 팔아버리지 말자고 다잡이 하기로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그 정신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내 보련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신탁을 유다 백성들에게 전한다. 헛것, 거짓, 생기가 없는 것, 멸망할 것에 집착하지 말 것을 말이다. 우상은 그런 거라고 경고한다.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문장은 “그 속에 생기가 없는 것”이라는 구절이었다. 쳇봇이 나왔다고 홍보할 초기에 이렇게 쳇봇에게 의뢰한 적이 있다. 마침 주일 낮 예배에 느헤미야 강해를 할 때라 의미를 갖기 위해 이런 명령어를 삽입했었다. 느헤미야의 영성에 대해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30초 만에 A₄ 용지 1매 분량으로 대단히 명쾌하게 답을 내주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이론적으로 읽을 만했다. 하지만 나는 쳇봇의 답을 읽기만 했지, 내 설교에 적용하지 않았다. 왜?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언한 오늘 성서 일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속에 생기가 없는 것” 틀린 말은 아닌데,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상은 그런 거다. 생기가 없는 것. 나는 설교 준비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하지만 한 편의 설교 원고를 작성한 뒤에 반드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이 원고에 압도하는 성령이 운행하여 주옵소서.” 성령이 운행하지 않는 원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기가 없는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나! 설교 원고가 우상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오늘 성서 일과는 가슴을 치게 한다. 두레박 (질문) 나는 우상을 단호하게 척결하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생기가 없는 것과 치열하게 싸우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압도하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민감하게 사모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자비의 하나님, 엄청난 비가 퍼 붇고 있습니다. 없는 자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