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일 금요일 성서 일과 묵상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47:1-11, 욥기 36:1-23, 고린도전서 9:1-16 꽃물 (말씀 새기기) 고린도전서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마중물 (말씀 묵상) 바울이 막 퍼붓는 듯한 오늘 성서일과를 묵상하다가 그냥 쨘했다. 동병상련이라 그랬나 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 중에 분실된 ‘서신 A’ 이후 두 번째로 오늘성서일과인 고린도전서를 썼다. 편지 안에 매우 섭섭한 바울의 마음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 안에 침투했던 율법주의적인 성향의 거짓 지도자들리 부화뇌동하여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게 한 것이 빌미였다. 그들이 고린도교회 지체들로 하여금 바울을 공격하게 한 내용은 자비량 선교를 하는 자가 어떻게 사도일 수 있겠느냐는 직접적 공격이었다. 교회 안에서 정당한 사례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바울은 정상적인 사도일 수 없다는 궤변으로 바울을 흠집 냈다. 이런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공격에 바울은 참고 참았던 자신의 속상함을 내비친 게 오늘의 성서일과다. 눈에 띄는 레마가 보인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눈물 겹다. 나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과 권리가 있는 사도지만,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또 너무 당연한 것처럼 교회가 내게 사례를 하지 않은 것을 참은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선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강변을 터뜨렸다. 그렇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 나도 젊은 날, 바울이 행했던 손해보는 잉을 마땅히 목사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선한 사역의 분깃이라고 여겼다. 그게 의로움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한 한 적절한 대우를 받으려고 한다. 물론 압박이나 강제가 아닌, 자연적 발로로 그렇게 하려 한다. 가장 강력한 이유는 섬기는 교회에서 내 역할에 대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또 한 가지는 교우들과 목사가 지녀야 할 예의를 깨뜨리지 않기 위함이다. 나는 예의가 있는 목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전제도 둔다. 교우들도 예의를 지키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목사의 사역을 존중해 주고,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예의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대접 받는, 섬김을 받는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다. 하지만 무시당하는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성서일과 텍스트에서 터져버린 바울의 울분과 토로에 같은 마음을 담아 응원한다. 두레박 (질문) 겉멋 때문에 속이 병들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대접 받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은 홀대와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습니다. 하나님, 바울처럼 참는 능력을 주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무시당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영성 훈련에 소홀함이 없게 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목사라는 이유로 많은 홀대와 무시를 당하는 동역자들을 위로하옵소서. 저들을 안아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