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월요일 성서일과 묵상 끄는 그대로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29편, 욥기 38:39-39:12, 고린도전서 12:1-3 꽃물 (말씀 새기기) 고린도전서 12:1-2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수 년 전에, 고린도에 다녀왔다. 마침 수리 중에 종교적인 고린도폴리스의 상징적인 장소였던 아프로디테 신전을 오르지 못하고 멀리서 가이드의 설명만 듣게 되어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오롯이 있다. 이렇게 아프로디테, 멜리세르테스 등등 헬라적인 우상 근거지에 바울에 교회를 세웠다. 종교성이 강해서 그런지 교회가 정착하기까지도 그랬고, 정착 이후에도 고린도교회는 끊임없는 문제들이 발생했다. 오죽하면 바울이 4번에 걸쳐 편지를 보내며 케어 했을까 싶다. 고린도 교회의 맹점 중에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우상의 도시이기에 교회까지 파급된 우상 종교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지체들에게 쓴 두 번째 편지(정경에서는 첫 번째 편지로 인식하고 있음)에서 신령한 일들에 대해 지적하는 메시지가 12장에서 보인다. 우상 숭배의 시절을 경험한 고린도교회 지체들에게 이렇게 바울은 표현한다, “끄는 그대로 끌려갔다.” 종교의 위험성 중에 하나는 바른 인식이 없이 몰입하게 되는 경우, 맹목이 될 수 있다는 치명성이다. 소위 말하는 ‘은사 장’을 시작하며 이 텍스트를 바울이 남긴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이 허락하기는 ‘카리스’도 바른 신학과 바른 인식이 없을 때 대단히 위험한 부정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기에 그렇다. 끄는 그대로 달려가면 안 된다. 주군께 질문하고, 불온하게 상기하고 엎드려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이다. 맹신과 광신은 끄는 그대로 끌려오라고 압박하는 사탄적인 강요요 폭력이다.
두레박 (질문) 나는 질문하는 신앙인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누군가에게 불온분자라고 공격당해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묻고 질문하게 하옵소서. 맹신과 광신의 틀과 싸우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성서일과를 철저히 묵상함으로 자른 신앙의 길을 가도록 나도, 세인교회도 다그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이번 한 주간도 영적 민감함에 있게 하옵소서. 무뎌짐과 온 교우들이 싸우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