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던 제자들 몇 명이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선생에게 인사한다고 찾아왔다. 적어도 30년 전, 내가 안수를 받을 때만 해도 목사라는 사역자는 어렵고 힘든 사역의 길로 들어선 것은 분명했지만,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30년이 지난 오늘, 제자들이 안수를 받는다고 하는데 난 축하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2021년, 목사로 산다는 것은 너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목사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현장에서 지역 교회를 섬기고 있는 개교회의 목사들의 상황은 어떨까? 점입가경이다. 그 고통의 길에서 당해야 하는 세간의 비난과 영적 외로움, 고독의 무게감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인이 어느 날 이렇게 내게 말했다. “목사로 살아줘서 너무 고맙다.” 아마도 목사로 이 시대를 산다는 것의 그 의미를 너무나 잘 아는 지인이 던져준 진정성이 있는 그 한 마디가 네게는 적지 않은 위로의 공명으로 울렸다. 그렇다. 목사로 산다는 것, 정말로 기적이다. Disciple Pastoral Academy(이하 DPA) 제 3기가 지난 25일, 춘천에 소재해 있는 하늘평안교회에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코로나 19의 상황이 아직은 엄중한 상태라 대면 모임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12명의 지원자들이 오프라인에서 모여 개강 예배를 드리고 모처럼 출발했다. 교회 공동체에서의 모임 자체에 대해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때인데, 이렇게 현장에서 DPA 사역의 첫 걸음을 띤 데에는 대표로 있는 오생락 목사와 그가 섬기고 있는 하늘평안교회가 자랑하는 DPA 스텝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동안 시에서 요구하는 철저한 방역과 지침에 순종했던 교회가 하늘평안교회이다 보니 이번 사역을 허락한 것은 하늘평안공동체가 뿌린 씨앗의 한 열매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이번에 지원한 12명의 3기생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어리석은 선택을 한 동역자들이다. DPA는 교회성장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를 잘 하기 위한 노하우 전수 프로그램도 아니다. 교회 목사들이 10여명 모이면 언제나 정치적 집단으로 변질된다는 누군가의 질타에도 DPA는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그런 색깔하고는 도리어 적대적 그룹이기 때문이다. DPA가 추구하는 것은 엘리압이 요구한 쓸데없는 힘겨루기가 아니고 골리앗과의 전투 모드를 갖고 있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강예배가 열리는 날, 3기 사역자로 지원한 12명 목회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원 동기를 들었다.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라떼’ 목사이기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조금 일찍 목회 현장에 나와 유람선에 승선하지 않고 군함에 올라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신다’고 노래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경험 때문에 동통(同痛)의 울컥함이 올라왔다. 더불어 분투하고 있는 저들이 갖고 있는 목회의 본질이 언제나 이기기를 응원했다. 유대인 종교 철학자인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이 말했던 촌철살인을 난 가슴에 새긴 적이 있었다. “우리 자신의 신앙에 의지하는 것은 우상 숭배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께 의지할 권리만 있다. 신앙은 보험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이며, 그 영원한 음성을 끊임없이 듣는 것이다.”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 p,208) DPA 사역이 왜 소중한가? 나를 의지했던 끈을 과감하게 놓게 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보험증서를 폐기하는 사역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 끈과 증서를 놓는 것은 순교적 영성과 본질을 추구하려는 사명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홀로 할 수 없는 이 일을 같은 마음으로 달려왔던 신앙의 선배들이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현장이 DPA다. 교회 신자 수를 늘리는 세미나에 머리가 터지게 몰려가던 그 상흔이 오늘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원흉이다. 단 한 명의 영혼을 사랑했던 한 사람 철학을 실천하는 곳이 DPA다.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원하는 12명의 동역자들이 2021년을 출발했다. DPA 3기생들이다. 난 이들이 갈멜 산상에서 외롭고도 치열한 영적 전투를 행하던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께서 남겨 둔 7,000명의 남은 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마치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중환자실의 중증 환자와도 같은 내 사랑하는 한국교회의 운명의 시간을 연장할 그리고 연장할 뿐만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울 주인공들이 되어 주기를 중보 한다. 이 상태로 가면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생명의 호흡을 다시 힘차게 숨 쉬게 해 줄 건강한 동역자들이 되어 주기를 화살기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