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그리스도론입니다.” “아버지, 지금 섬기는 교회와 직전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예수 믿는 크리스천 청소년들에게 예수께서 걸으셨던 삶, 그가 택하셨던 비주류의 길에 대하여 지극 정성으로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신앙인의 결론인 것도 압니다. 그런데 작년 후반기부터 제 메시지를 아버지가 가르쳤던 메시지와는 차별을 두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금 맡고 있는 아이들은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걸으셨던 비주류의 길에 대하여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통해 행하셨던 공의와 정의에 대한 담론을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하면 딴 세상의 말로 치부해 버리곤 합니다. 헷갈렸지만 왜 학생들이 그런지를 사역하다가 발견했지요. 아이들은 예수의 삶이 궁금한 것은 고사하고 예수가 누구인지 자체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어요. 예수라는 존재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 분의 삶이 뭐가 중요하다고 관심을 갖겠어요. 그래서 금년부터 고등부 설교 사역의 방향을 틀기로 했어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인가? 에 대한 명제의 답이라고. 그래서 요즈음 제가 다시 가다듬는 것은 돌고 돌아 다시 그리스도론입니다.” (1월 20일 욥기강해 수요 설교 강해 원고에서) 제천에 잠시 들린 아들과 이 대화를 하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들려준 울림이 단지 아들이 파트로 사역하고 있는 교회의 고등부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도 너무 중요하게 적용해야 하는 메시지로 공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사람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지체들 역시 부족한 사람이 설파하는 메시지에 관심이 없이 가리산지리산 헛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돌고 돌아 다시 그리스도론입니다.” 아들의 이 말이 내내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는 아들이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고등부 학생들에게 하는 사역에 매몰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신앙의 결론은 예수에 대한 ‘앎’이 아니라 ‘삶’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아들이 툭툭 던지고 가는 말이 가끔 심장을 뛰게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아들도 이제 조금씩 사역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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