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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김기석 목사의 추천의 글2024-06-04 17:57
작성자 Level 10

진리의 순례자로 산다는 것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자기의 흔적과 만난다는 것그것은 참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가령 다리쉼도 할 겸 차도 마실 겸 우연히 들른 북카페에 진열된 책을 일람하던 중 내 이름자가 박힌 책과 만났을 때가 그러하다그럴 때면 카페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해지고호감에 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 화면에 눈길을 주고 있는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드는 사람이 있어 바라보니 그가 기적처럼 내 책을 펼쳐 들 때도 마찬가지이다말이라도 한번 건네볼까 싶은 생각이 들어 잠시 망설이지만 쑥스러워서 그런 짓은 하지 못한다그러면서도 궁금해진다. ‘그는 지금 어느 문장을 읽고 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짓는 표정에 예민해진다.

 

글쓰기를 유리병에 담아 파도에 띄워 보내는 편지에 빗대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그 글이 어디를 향하는지누구에게 당도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그러나 글 쓰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 글이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그들이 정신적 둔감함에서 깨어나기를 소망한다주제넘은 소망일지 모르지만 그런 소망조차 품지 않는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어떤 이들은 글을 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그만큼 글에 공력을 들이고자기의 혼을 담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나의 경우 그런 장엄한 말은 다른 이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나는 왜 쓰는가써야 할 말이 넘치기 때문일까전혀 그렇지 않다쓰지 않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텅 빈 백지와 마주한다는 것아니 눈을 껌벅이며 입력을 기다리는 화면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한 시간을 견디며 한 소식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익숙함의 세계에 갇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써야 할 글의 얼개를 다 정하고 글을 쓰는 이들도 있지만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자기를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나의 경우는 후자이다물론 최초에 그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있지만그것은 그야말로 계기일 뿐처음 생각과 완전히 다른 곳에 당도할 때도 많다당혹스럽지는 않다글을 구상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나 분명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지점을 발견했으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다글쓰기의 선물은 바로 그런 것이다.

 

다시금 묻는다. “나는 왜 쓰는가?” 굳이 대답해야 한다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기독교인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다중뿔나게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다만 나 자신을 먼저 설득하고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길을 함께 가보고 않겠느냐고 제안하고 싶은 것이다나의 글에 공감하든냉철하게 비판을 하든어떠한 형태로든 독자들에게 사유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목사는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공부는 다 소용없다고기도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다목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어야 한다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욕정에 휘둘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옛사람은 인간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도를 지키려는 마음은 극히 희미한 것이니 정신 차리고 오직 하나로 모아그 핵심을 꼭 붙들어야 한다고 말했다핵심을 붙들기 위해서는 늘 인식에의 목마름을 품고 살아야 한다시대정신을 분별하는 동시에그 속에서 위태롭게 허둥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하나님이 부르시는 삶의 방향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도록 만드는 시대정신과 맞서기 위해서는 지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목사가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공부하지 않는 목사는 사람들을 오도하기 쉽다스스로 길을 잃은 목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강덕 목사는 공부하는 사람이다목회자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다는 말이다그는 자신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 말하지만또 그 말이 은근한 자부심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그는 학생정신에 충만한 사람이다그런 의미에서 그는 목사다운 목사이다눈 밝은 그가 내 책 열세 권을 읽고 서평을 적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왠지 나의 허술하고 부실한 사유세계를 간파했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조금 안 후에 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이강덕 목사는 그렇지 않다그는 일종의 전작주의자인 모양이다이런 사람은 말리기 어렵다책 말미에 덧붙인 참고도서 목록만 봐도 얼마나 치열한 인식욕의 소유자인지 짐작할 수 있다단순한 인식욕이 아니다그는 참의 길을 맹렬하게 탐색하는 진리의 순례자이다그가 열어가는 인식의 세계를 통해 많은 이들이 낯설지만 황홀한 세상과 만나 현실의 인력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이렇게 멋진 글벗과 만났다는 사실이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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