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5:12-18 제목 : 하나님의 사역 라인에서 벗어나지 맙시다. 오늘 본문은 지난 호에서 두 번에 걸쳐 살펴본 드보라와 바락이 900 철병거로 무장한 시스라의 막강 군단을 물리쳐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연이어 찬양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어진 본문에는 눈여겨 볼 대목이 있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두 부류를 냉정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부류는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와 전투할 때 함께 전투에 참여한 지파와 또 한 부류는 전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지파입니다. 전자는 에브라임, 베냐민, 요단강 서쪽의 므낫세 반 지파(마길), 스블론, 잇사갈, 납달리 지파 등인데 그 중에 마길, 잇사갈 지파에서는 뛰어난 전략을 가진 지도자들과 장군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도움을 주었고 스불론, 납달리의 형제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다해 전투에 임하였음을 독자들에게 알립니다.(14-15절, 18절) 반면 후자는 본문 16-17절에 소개된 지파인 르우벤, 단, 아셀, 길르앗으로 기록된 요단 동쪽의 또 다른 므낫세 반지파와 갓 지파였습니다. 이들은 시스라 군대와의 전투를 통해 동료 지파가 목숨을 걸고 공동체를 지키려고 하는 싸움에 방관하였습니다. 특히 큰 형 지파인 르우벤은 처음과 마지막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초기에는 전쟁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전쟁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초심이 변한 것입니다. 또한 길르앗과 단과 아셀 지파는 아예 딴 나라였습니다. 전혀 상관이 없는 이방인과도 같은 비겁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여하신 역사를 방관하는 치명적인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들 지파의 후대가 당해야 했던 결과들을 성경의 역사는 분명히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아셀 지파는 기드온 사사 때 잠간 역사의 무대에 선을 보일 뿐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또한 단 지파는 미가가 만든 우상 숭배에 몰두하는 버림받은 지파가 되었고, 므낫세 반지파와 갓 지파는 반복되는 외세의 침략을 받고 그들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수모를 당하게 되는 역사를 맛보게 되었음을 말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이었던 시스라와의 기손 강가 전투는 이런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간의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양분되어 있었던 역사를. 그러나 초기 가나안 정착 시기의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이런 우여곡절을 갖고 있었지만 분명히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성경적 증언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기게 하셨다는 증언입니다. 이스라엘의 형편이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였지만 하나님이 이 전쟁을 이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全)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점 말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에 밀리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들의 정황들로 인해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이것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역 라인에서 탈락되지 말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3장을 보면 느헤미야의 철저한 영적인 준비와 기도에 힘입어 성벽 재건이라는 위대한 사역이 이루어질 때 함께 동역한 사람들의 이름과 사역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려 75명의 사람들과 15개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 이 위대한 일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3장에 유독이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3:5절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드고아 출신의 귀족들은 이 일에 방관했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노력했는데 드고아의 귀족만은 열외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식층의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도 상류층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방관자가 되었고, 낙오자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들의 물질과 지식이 우선순위였기 때문입니다. 재 강조하거니와 드고아의 일반 서민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데 모두 함께 힘을 모았는데 귀족들은 담부치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자신들의 이기적 속성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한 말로 언급한다면 귀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팔짱을 끼고 성벽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엿보는 방관자가 된 것입니다. 불행한 인생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비극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감옥 창밖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함이다.” 하나님의 사역에 무감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무반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역 라인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라인 안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선 밖에 서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