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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크리스천 연합신문 14번째 기고문2024-06-04 17:48
작성자 Level 10

제목균형이 중요합니다.

본문사사기 3:7-11

 

본문은 사사기 중반에 기록된 6명의 대사사의 기록 중에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옷니엘 사사가 8년 동안 가나안 초기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유린하고 핍박했던 메소보다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건져낸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필자와 독자들은 이미 이전 글을 통해 사사 시대에 선명하게 나타났던 나선형 하강(downward spiral)의 구도로 진행되던 순환론적 역사관에 대하여 주지한 적이 있었습니다즉 배반심판회개구원의 사이클로 반복되던 사사 시대의 독특한 역사 흐름의 구조 말입니다옷니엘 사사가 벌인 메소보다미아와 전쟁은 바로 이런 구조에서 진행된 첫 번째 증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목전에서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배반을 하자메소보다미아 왕인 구산 리사다임을 들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이로 인해 8년이라는 세월동안 고통을 당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하나님은 저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옷니엘 사사를 들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이 전형은 앞으로 펼쳐질 사사 시대의 순환론적인 역사 구조이기도 합니다옷니엘을 통한 사사 시대에 펼쳐진 첫 번째 구원사를 통해 필자는 중요한 교훈을 찾고자 합니다.

성경적 내증이 바로 10절 본문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① 여호와의 영이 임할 때 이기게 하십니다. (전반절이 말은 승리의 주체가 옷니엘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② 옷니엘의 행함입니다.(중반절주목할 10절의 또 다른 구절은 나가서 싸울 때입니다.

옷니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임한 뒤에 로봇처럼 혹은 기계처럼 수동적인 자세로 여호와의 영이 싸우는 것을 방관하거나 뒷짐 지고 있지 않았음을 분명히 합니다도리어 가장 능동적인 자세로 그 전쟁의 현장으로 나아갔습니다그 치열한 전쟁의 현장에서 칼을 들고 싸웠습니다그러자 하나님은 그렇게 싸우고 있는 옷니엘에게 영으로 임재하신 것은 물론 결국은 리싸다임(이중으로 악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메소보다미아의 막강 군주인 구산을 물리치게 해 주셨음을 역사가는 보고합니다필자는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된 이상의 옷니엘 사사의 기록들을 곱씹으면서 대단히 중요한 영적 교훈을 받습니다.

 

● 오늘 2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로 절실한 것이 신앙의 균형(equilibrium)이라는 교훈입니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라면 본문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두는 교훈을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한 일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을 것입니다반면조금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신앙인들은 나가서 싸울 때’ 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경우에 따라 나름 갖고 있는 색채로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그러나 필자는 조금 냉정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 보다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입니다옷니엘이 잘 나서 구산 리사다임과의 전투에서 이긴 것이 분명 아닙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직접 선두에 나서서 사람의 모습을 하시고 구산을 물리치신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하나님의 도구로 합당했던 옷니엘이 직접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으셨던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의 힘을 부여하시기 위해 영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그리고 결국은 구산 리사다임과의 전쟁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근래이념적 성향에 따라 극단의 갈라섬이 보이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상황을 보면서 목회 현장에서 교우들과 함께 부대끼고 있는 목사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편향은 정치에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앙의 필드에서는 용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감리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한 김득중 교수의 칼럼 집인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프랑스의 아주 한적한 농촌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농부가 레지스탕스로 오해되어 독일의 비밀경찰에 체포되는 바람에 졸지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 신세가 됩니다너무 억울한 농부는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대인이 아니다나는 레지스탕스가 아니다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김득중,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p,51.)

그러자 옆에서 같이 체포된 진짜 레지스탕스 요원이 농부를 보며 냉소적으로 이렇게 힐난했습니다.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그것이 잘못이다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죽어 마땅하다전쟁은 5년이나 계속되었다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참하게 피를 흘렸고 수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어 버렸다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에 놓여 있었다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위의 책, p,52)

전율했던 대목입니다여호와의 영이 나에게 임하는 것과 그 영이 내가 일하기를 원하시기에 현장에 나가 싸울 때 나를 돕는다는 신앙의 균형을 맞추어 남은 사순절 기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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