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서
아들 놈의 겨울 옷들을 챙겨서 기숙사에 전해주고 서울에 개업심방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서울에 올라가 사역을 마치고 모교에 다녀왔다. 방문한 김에 모교에서 질높은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수고하는 동기 교수도 만나 점심 교제도 하는 좋은 시간도 가졌다. 친구와 만남을 갖고 나서 가지고 간 겨울 옷가지들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마침 아들 수업시간이라서 브레이크 타임까지 고즈넉하게 32년 전에 입학한 모교를 둘러보았다. 캠퍼스는 그대로인데 왠지 모르게 우뚝 세워져 있는 건물들이 옛 추억들을 흐리게 한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 하나님의 꿈을 꾸게 했던 채플 예배당 명헌 기념관에 들어섰다. 예배 때마다 때로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주의 종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감격해 하며 주님을 만나던 장소,... 종교음악과 동역자들이 고난주간에는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를 찬양할 때 주님의 십자가를 체휼하던 바로 그곳, 부활절 예배 때는 오라토리오 '할렐루야'를 찬양하며 부활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던 감동의 장소, 아내와의 결혼을 위해 명헌 탑 기도실에서 40일 동안 준비 작정 기도를 하던 그 추억의 장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학생들을 위한 라운지로 변모하여 카페와 학생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과 스낵들로 변화된 명헌 기념관은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된 명헌기념관에서 이상하게 가슴에 밀려오는 공허함이 밀려오는 이유는 왜일까? 지금은 모교가 놀라우리만큼 발전되어 도리어 기뻐해야 하는데 식권 550원을 아껴 모아모아 전공서적을 사기 위해 금식기도 하러 올라갔던 성주산 기도터는 매머드 건물로 함몰되어 흔적조차 사라진 모습을 보며 조국교회의 영적인 기상도를 보는 것 같아 우울하다. 교정을 돌아보던 중에 아들에게 폰이 울린다. "아버지, 어디 계셰요?" 대를 이어 주의 사역을 감당해 주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고맙지만 순교적 시대의 목회자로 살아가야 할 아들이 못내 안스럽고 안스럽다. 옷가지를 전해받고 다시 수업에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함께 저녁 식사도 한 끼 못하고 내려온 아비의 마음이 아들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다. 순교적 시대의 사역자로 활돌할 아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목회자로 성장해 주기를 기도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