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를 읽고 -
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386세대들에게는 다른 세대들이 상상하지 못할 특별한 경험들이 있다.
캠퍼스에 자욱한 최루탄 연기, 동료들의 투옥,투신....
월드컵 응원을 위해 시청 앞을 메웠던 것이 아니라 투신한, 분신한 동료들을 위해 시청 앞을 가득 메웠던 만장.
“행동하는 양심” 이라는 단어가 모든 학생들에게 짐처럼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었다.
“어떤 미친 사람이 무고한 행인들에게 차를 몰고 돌진하는 것을 본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그저 그 끔찍한 재앙을 지켜보다가 부상 당한 사람들을 돌보고 죽은 사람들을 장사 지내는 일만 할 수 없습니다. 그 운전자의 손에서 억지로라도 운전대를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본 회퍼의 말처럼 직접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든지.....
디트리히 본 회퍼는 신학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행동을 통해 전 세계의 비 그리스도인들 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글을 읽는 내내 80년대의 한국의 상황을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장을 보니 내가 몰랐을 뿐이지 본회퍼는 한국 기독교 학생운동의 “주요한 신학적 멘토”였다고 한다.
물론 한국이 당면한 문제였던 민주화 운동과 본 회퍼가 직면했던 문제, 즉 1930 ~40년대의 독일의 문제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곧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약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돕는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데 본 회퍼의 사상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기도, 성경 읽기, 예배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신념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은 교회 안으로만 제한되어서는 안되며 그리스도인은 삶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아야한다라고 또한 주장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받은 아이, 즉 에버하르트와 레나테 베트게 부부의 아들인 디트리히 빌헬름 뤼디거 베트게의 세례식에 보낸 편지를 보면 본 회퍼를 마주보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두가지 존재 방식에 의해서만 성립된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정의를 실천하고자 행동하는 일이 그것이다.”
본 회퍼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