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아니지만 독일인,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228쪽) 독일인들에게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평가가 또 있을까? 레비는 아우슈비츠 제3 수용소에서 노예 같은 구금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아 조국 이탈리아로 귀환한 뒤, 독일의 만행을 천하에 고발한 유대계 작가다. 그가 남긴 걸작 『이것이 인간인가』에 수록된 이 문장은 독일에게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치욕감을, 각 나라에게는 경종을 울려준 메시지였다. 나는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 빅터 플랭클 등등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지성적 증인들의 책을 의무감으로 섭렵했던 기억이 있다. 왠지 이 일이 그들이 남긴 흔적을 읽는 것에 무감각했던 나를 자책하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발문은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 한나 아렌트의 철학적 화두를 증명이나 하듯이 전체주의 망령이 존재했던 시절을 발가벗기며 고발했다. 읽으면서 몸소리를 쳤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이들이 나치 독일의 만행을 주저없이 고발한 것은 맞지만, 그의 글들 면면에는 완전한 사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에 대한 궁극적 용서를 가닥으로 잡은 아이러니가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의 이런 용기는 결국 폭력을 사랑이 이긴다는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최악의 짓을 보였던 자들을 이긴 것은 되갚음이나 동해보복법 같은 앙갚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품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팩트를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용기에 대해서 박수를 보낸 것은 맞지만, 개운하지 않은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다. 왜 이런 찝찝함이 있지? 장 아메리가 그 답을 제시했다.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 빅터 플랭클과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고통을 당했던 장 아메리는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때, 돌연변이다. 그는 앞서 전술했던 이들의 기상도와는 전혀 달랐다. 가령 예를 든다면, 본서에서 『원한』에 대한 소회를 피력한 아메리의 텍스트는 결정적 정보를 준다. 피해자는 저자다. 가해자는 나치 독일의 권력자였다. 이 두 관계가 암묵적으로 동의 되고, 시간의 갭이 진화되면 될수록 표면에 드러나는 일이 용서라고 앞선 경험자들의 일례를 소개했다. 마치 이런 일련의 일들이 도덕적으로 마치 옳은 양, 몰고 가려는 시도에 대하여 저자는 맹렬히 비판한다. “내 생각을 밝히고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미 언급한 확산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 확신이란 두 사람, 곧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들의 극단적 대립 속에서 공동의 과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하려면, 희생자와 학살자 사이에 해소되지 않은 갈등을 드러내고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169쪽) 쉬쉬하지 말자는 말이다. 드러내자는 거다.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범죄를 그대로 직시하고, 그 범죄에 대한 정직한 심판이 전제된 뒤에야 용서라는 가치도 빛을 발한다는 아메리의 도전이 내게 더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사라는 직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그 세월이 흐름 안에서 숨죽이며 살았던 내내의 아픔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고난의 흔적 닮기라는 테제로 얼버무려 온 게 목사의 실상이다. 하지만, 이제 은퇴를 바라볼 나이에 들어서서 그런지 고변(苦辯)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세속화되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억울함에 대한 아픔, 무고함에 대한 상처, 아메리처럼 씻을 수 없는 육체적 린치라는 고문을 당하지만 않았지만, 목사 역시 결코 그 상처의 무게감에 있어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영혼이 린치당한 삶의 자국을 갖고 있는 이들이기에 그 고통을 무조건적 예수님의 용서라는 도구로 덮으라는 것은 너무 무자비하다. 심지어 2차 가해로 여겨지는 폭력에 고스란히 방치된 느낌이기에 나는 아메리의 성토와 항변에 지지를 표하고 싶다. “20년 동안 내가 겪은 일을 곰곰이 생각한 후, 나는 사회적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용서와 망각은 부도덕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160쪽) 이것이 나로 하여금 아메리의 성토를 응원하게 된 이유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용서의 도를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비난받아도 괜찮다.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합의가 전제될 때 비로소 진정한 용서가 완성되기에 사회적, 정치적, 혹은 집단적 여론몰이로 인해 진행된 원한의 제거를 두둔하는 것은 피해자를 다시 가격하는 2차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장 아메리는 이 폭력과 맞선 최초의 피해자다. 장 아메리는 책의 후반부에서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이라는 테제에서 결코 쉽지 않은 철학적 숙제를 던졌다. “나는 이스라엘의 신을 믿지 않는다.”(181쪽) “유대인이란 사실이 문화적 소유나 종교적 유대감을 말한다면 나는 유대인이 아니고, 결코 유대인이 될 수 없다.”(182쪽) 사정이 이렇다면 저자는 유대인은 고사하고 이방인의 안방에 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아메리는 당시 정치역학적 도그마 안에 원치 않게 함몰되어 치욕스러운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다. 이어 저자는 수용소 시절, 전혀 유대인스럽지 않은 나였지만 동일선상에서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불가항력적 폭력을 당하면서 너무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고 피력했다. “나는 십장에게 고통스럽게 매를 맞으면서도 나 자신에게 만족했다. 용기와 명예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신체가 우리의 전 운명이 되는 삶의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중략) 신체적 폭력 행위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분열된 인격을 복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는 구타를 통해 내가 되었다.” (195〜196쪽) 글의 문맥에는 감추어져 있지만, 유대인스럽지 않은 아메리가 유대인들에게만 가해지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는 논리 전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아챘다. 그는 유대인이 되라는 강제성이 덧붙여지면 질수록 더 강하게 반유대적 심리가 작동했지만, 도리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고스란히 유대인들에게 적용된 고통을 당할 때,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한 유대인이 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 자각을 수용한다는 저자의 역설을 들으면서 소름 돋게 하는 유대인만이 갖고 있는 무섭고 무서운 정체성을 발견했다. 왜 아메리의 갈파에 나는 팔을 걷게 되었을까? 왠지 모르게 아메리를 통해 평생 목사로 살아오면서 견뎌야 했고, 참아야 했던 핏자국을 되짚고 살필 수 있는 신학적 물음에 답을 얻었다고 자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 신드롬이 폭발했다. 너무 기쁜 일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저자의 글을 원서로 읽을 수 있다는 쾌감은 실로 엄청난 감격이다. 그래서 한강이 남겨 놓은 시집에 담겨있는 시어를 다시 서고에서 꺼냈다. 다시 들추어 보다가 밑줄 그어 놓았던 그녀의 시말(詩唜)을 오늘 서평의 엔딩 멘트로 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남겨본다.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거리 한가운데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내 가슴에서 당신은 거리 한가운데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 지성사, 37쪽) 눈물 흘림과 아파함과 고통스러워함은 저주가 아니다.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촉수다. 아메리가 남긴 글감은 상투적이고 교과서적이지 않은 아파함과 고통스러워함을 내게 넘겨준 선물이었다. 나는 또 치열한 목회 현장에서 이 아픔에 눈물 흘리고 있지만, 이 삶이 그래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는 감격 안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