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인천에 달동네가 있었다. 송림 5동이라는 달동네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곳은 나환자들의 집단 부락이 있었기 때문에 문둥이 촌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별칭까지 달려 있었던 도시 빈민촌이었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인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그곳이 나환자들과 도시 빈민들이 살았던 열악한 곳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변신을 이루었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도시 빈민 목회를 하면서 낮은 자들과 함께 부대꼈던 친구 목사가 있다. 친구 목사는 송림 5동이 개발됨으로 도시 빈민들이 떠나게 되자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유명세를 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천의 마지막 달동네이자 도시 빈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만석동으로 자리를 옮겨 목회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친구와 20대 초반, 신학교에서 만나 어떤 사목을 감당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할 때부터, 그 친구는 소위 말하는 특수 목회라고 할 수 있는 도시 빈민들을 위한 목회를 꿈꿨고 결국 그 길로 주저 없이 나아갔다. 이제 육십 중반에 접어든 친구와 필자는 목양의 방법, 신학적인 결, 더불어 예수에 대한 이해(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그리스도)까지도 다르다. 하지만 필자는 그 친구를 존경한다. 감히 그가 감당해 왔던 소외된 자들을 품는 사역의 신들메를 풀기도 버거운 부끄러운 목회를 해 왔기에 그 친구가 걸어온 사목의 전 영역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필자와 친구와의 관계를 아는 어떤 후배가 이런 이야기를 농 반 진 반으로 던진 것은 어떤 의미로 보면 팩트다. “형님들 두 분이 친구로 평생을 같이 걸어왔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나는 왜 도시 빈민 사역을 감당한 친구를 존경하며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일까? 그 답을 오늘 평(評)하고 있는 『천국의 열쇠』 때문이라고 말하면 적절할 것 같다. 본서는 내가 사회적 구원을 위해 전 인생을 바친 친구의 목양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된 실마리가 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원을 다닐 때, 본서를 처음 만났다. 9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갖고 반추하면 파주에서 목회할 때였다. 파주라는 도시는 당시, 흡사 갈릴리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싶다. 예루살렘을 거처로 산헤드린 공회라는 유대 기득권 종교의 권력을 갖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자들과 정치적인 지배자들인 로마의 권력 그리고 헤롯이 치세하던 분할 지역이었기에 또 그들이 요구하는 이런저런 경제적 착취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었기에 피폐할 대로 피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갈릴리의 민초(民草)들과 엇비슷한 정황들을 갖고 있었던 자들이 살던 지역이 파주였다. 그러다 보니 필자가 섬기던 교회 구성원 역시 소위 말하는 온전한 가정이 별로 없는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자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은 지난(持難)한 일이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나서 그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대전제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아픔을 진정성이 있는 마음으로 공유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은 녹록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감내할 때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7년 사역 기간은 참 많이 울었던 시기였다. 바로 그 시기에 본서를 만났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내게 『천국의 열쇠』는 목회의 마그나 카르타로 다가왔다. 목회자의 신학, 올바른 목회자의 자세, 앞으로 펼쳐 나가야 할 목양의 틀, 더불어 목양의 순간순간 유혹하고 있고 또 유혹할 치명타가 목회도 세속적 가치의 일환으로 여기라는 사탄적인 유혹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나침판이자, 시금석의 역할을 하게 해 준 보석과도 같은 양서(良書)가 바로 본서다. 같은 신학교에서 동문수학하며 사제의 길로 들어선 두 사람, 프랜시스 치셤과 안셀름 밀리 신부의 사역 궤적을 비교 관통하면서 저자 크로닌은 독자들에게 대단히 큰 울림을 준다. 안셀름 밀리는 소위 말하는 성공(?)한 신부의 길을 걸었던 상징적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다. 가톨릭적인 분명한 신학, 태어나면서 자연적으로 얻은 특출한 외모, 강론할 때는 회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빼어난 언어 구사력을 사용하는 등 사제로 성공할 수 있는 제반적인 세속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고루 갖춘 인물로 묘사된다. 거기에다 그는 정치적인 수완도 탁월하여 가톨릭 기득권 지도부와 결탁하여 상층부에 있는 자들의 마음에 부합한 구도에 따라 야합함으로써 출세할 수 있는 가도를 달린다. 예를 들어 보좌신부 시절에는 성 도미니카 성당이 조직적으로 동의한 타이니캐슬에 있는 조작된 신비한 샘물 기적을 진두지휘하는 범죄를 자행했다. 주임 신부 시절에는 기득권 정치권과 야합하는 짓을 서슴지 않아 승승장구하는 신부의 대명사로 등극한다. 이에 반해 프란시스 치셤은 안셀름 밀리와 비교하여 반대급부에 서 있던 사제의 대표성이다. 앞서 전술(前述)한 타이니캐슬 지역의 조작된 권위에 대항하고, 저항한다. 이 일이 인해 급기야 지도부의 미움을 산 치셤은 외방 선교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파이탄 지역으로 좌천되어 맨땅에 헤딩하는 고난을 경험하는 것을 시작으로 주임 신부이자 선교사의 일을 감당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파송된 수녀와의 신학적 충돌로 인해 극한 갈등을 경험하고, 중국까지 덮친 페스트의 창궐로 인하여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사투한다. 극적으로 목숨을 이어갔지만 이어 파이탄 지역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몰고 간 내전으로 인해 육체적인 린치를 당하고, 죽음의 직전까지 가는 고난을 경험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극적인 은혜로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열악한 이방인 선교를 눈물겹게 감당한 신실한 사제의 모습을 현장에 남긴다. 안셀름 밀리의 스펙트럼으로 볼 때, 치셤은 철저히 실패(?)한 사제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저자는 이 두 인물의 교차적인 인생 항로를 설명하면서 대단히 선명하게 독자들에게 선언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음을 피력한다. 책 제목에 대한 메시지다. 『천국의 열쇠』라고 소설의 제목을 정한 저자는 ‘열쇠’에 대한 신학적인 함의를 독자들에게 묻고 싶었던 분명한 집필 의도를 소설 전반에 열거한다. 세속적인 스펙트럼으로 조망할 때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자가 과연 안셀름 밀리 신부일까를 질문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로닌의 반전은 역설적이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허락하신 천국 문 열쇠를 소유한 자는 밀리가 아니라 치셤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이 소설의 집필 목적이자 의도였기에 말이다.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인 챨스 킴볼은 이렇게 갈파했다. “진리를 찾는 것보다 진리를 아는 편이 훨씬 쉽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여행과 같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고, 과거에 배운 것을 버리고, 변화를 겪으며 성장한다. 종교적 진리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서 절대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는 주장으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종교적 진리의 탐구는 멈추지 않고 항상 계속되는 과정이다.” (챨스 킴볼, 『종교가 사악해질 때』, 현암사, 126쪽) 나는 킴볼의 통찰을 새기고 또 새긴다. 그래서 그런지 ‘절대적’ 혹은 ‘반드시’라는 단어를 가급적 회피 하고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단어에 매몰되면 주군이 요구하시는 신앙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내 신념을 섬기는 교만한 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말이다. 치셤은 자기의 사목 현장에서 인간의 극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종교적 난제에 봉착한다. 그 중 하나가 무신론자 의사였지만 대사회적인 삶을 가장 성자답게 살아낸 친구 윌리 탈록에 대한 죽음에 대한 종교적 제 문제였다. 탈록은 치셤의 좋은 친구였다. 그는 신부의 직을 갖고 있는 치셤을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존재였다. 파이탄에 치명적인 페스트 전염병이 돌았을 때, 자원하여 친구를 돕고 병자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에서 중국까지 자원하여 들어온 열정 있는 의사였다. 참 많은 환자들을 살렸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페스트에 감염되어서 사망한다. 소설의 여러 사건 중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그려주는 대목이 있다. 사랑했던 친구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임종을 지키며 나눈 두 사람의 대화였다. (376쪽) “이상하지, 아직도 신이 믿어지지 않아”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니?” 치셤 신부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무력한 자기 자신을 탓하며 울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혼란 상태에서 그는 불쑥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나님이 자네를 믿으실 텐데.” “이 사람아, 무리하지 말게나. 나는 회개하지 않아” “인간의 괴로움, 그게 다 회개하는 행위라네.” 탈록은 대꾸하지 않았다. 치셤 신부도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탈록은 힘없이 손을 내밀었다가는 그 손을 신부의 어깨에다 올려놓았다. 저자가 진술한 두 사람, 치셤과 탈록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기독교적인 교리에 대한 이탈로 해석될 수 있는 불온한 대화다.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죽어가는 친구에게 마치 구원받았음을 선포하는 행위처럼 보이고, 반면 무신론자 탈록이 대신 이런 위험한 반응을 보이는 치셤을 염려하는 이 아이러니한 대화를 읽다 보면 대다수의 독자들은 『천국의 열쇠』를 대단히 반신학적이고 반교리적인 불온한 서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젊은 목사 시절, 이 책에 열광한 이유는 교리적인 논쟁과 담론에 대한 치열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책 집필의 목적이 당시 필자가 목회하던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정황에서 갈등하던 나를 치유하기에 충분했던 영적인 방향성이 고스란히 책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감격이 있었기에 젊은 날, 이 책을 덮고 가슴으로 치셤을 안았다. 치셤이 걸었던 길을 나도 걸어가겠다고 결기하면서 말이다. 목사의 삶, 목사의 질, 목사의 신학적 자세는 그가 갖고 있는 성향과 사상에 따라 얼마든지 결이 다를 수 있다. 조금 더 과장한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목회자들을 자유자재로 쓰신다고 표현할 수 있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목회 철학을 크로닌의 소설을 통해 다잡이 할 수 있었던 추억은 내게는 엄청난 축복이었다. 1992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는 현장에서 나는 무릎을 꿇었다. 안수 위원 원로 목사께서 손을 얹어 안수하실 때 눈물로 반응하며 세 가지를 하나님께 서원했다. ⓵ 갈라디아서 1:10절 말씀 그대로 사역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⓶ 물질에 지배당하는 목사로 살지 않겠습니다. ⓷ 나이가 들어 연륜이 쌓여도 결코 정치하는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제 이 서원을 드린 지 32년을 지나고 있다. 적어도 필자에게 이 세 가지는 현재진행형인 내용들이다. 부활하신 주께서 여자들에게 고지(告知)했던 내용은 이랬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 28:10) 갈릴리에서 사역하셨고, 부활하신 뒤에 또 다시 갈릴리로 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갔던 주인공이 바로 프란시스 치셤이었다. 그의 길을 만나려면 『천국의 열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아직 문은 열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