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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박노해의 『눈물 꽃 소년』 (느린 걸음 2024년 간)을 읽고2024-06-11 10:27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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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잃어버린 원형의 것들이인간성의 순수가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는 흙가슴의 사람들이 바로 얼마 전까지 있었다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나의풍경이었다.” (242)

 

작가가 글을 빠져 나오면서 쓴 전체 글감의 맥()이다이 글을 접하다가 울컥했다작가의 고백이 이제 이순(耳順)의 중반기에 들어선 필자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리라육십 평생을 산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예외없이 가슴 시린 풍경을 갖고 있다표할 수 있든지그러지 못하든지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슴 한 켠에 이런 흙가슴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움켜 쥐고 있다작가는 이렇게 푸르고 푸르른(내 감성의 소회다.) 이야기를 연이어 풀어놓는다.

 

세상이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워지고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우리는 우울과 혐오와 무망(無望)의 감정에 휩싸여 있다.” (244)

 

그래서 그런가필자는 작가가 표현한 흙가슴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단어가 너무 정감 있게 다가왔다.

사순절을 지나고 있는 어느 날교회력에 따라 주어진 성서일과를 접했는데 소스라치게 놀란 구절이 나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마가복음 14:72절을 공동번역이 이렇게 기술한다.

바로 그 때에 닭이 두 번째 울었다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그는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예수를 부인한 뒤의 베드로의 반응을 마가복음 기자가 표현한 글이다베드로는 자신에게 부인을 예고했던 예수의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고 했다그리고나서 이윽고 반응했다.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I fell to the ground and cried bitterly.)

 

작가의 말대로 이 시대의 비극과 재앙은 독해짐이다사나워짐이다천박해짐이다육신의 병듦이 아니라불치의 상태에 이른 영혼의 병듦이다너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혼이 병든 영역에 주어지는 결과물은 우울과 혐오와 소망을 갖지 않는 무감각의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비극이다백약이 무용지물이다이런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중병을 치료하는 처방전을 썼다본 서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난했지만 너무 아름다운 서사들을 빼곡이 추억하며 글 속에 담아 놓았다그 한 올 한 올이 나에게는 주옥같은 선물로 다가왔다그가 내놓은 주옥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작가 스스로가 피력한 대로 칠십 성상을 바라보는 오늘의 본인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수많은 보석같은 사람들의 수고로 조각된 선물임을 주저없이 밝힌다평자(評者)는 글을 읽는 내내작가의 글과 여행하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나를 감동의 포로로 만들어 옴짝 달싹하지 못하게 구속한 내용들은 지천이다지면 관계 상 몇 몇만 소개하는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

 

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임시 담임을 만났던 수그리 선생에 대한 추억담을 소개한다선생은 한 학기만 작가의 학교에서 근무하며 교직 생활을 했는데 언제나 학생들의 말을 겸허하게 들어주며 머리를 잘 숙이는 버릇이 있어 동무들이 수그리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단다마침 수그리 선생이 전근을 떠나는 날이었다그날작가와 선생이 주고 받은 대화는 글을 읽는 내게 벼락과 천둥소리로 다가왔다.

사람이 말이네단 하나 알아야 할 그것도 모르는 부끄러운 사람이 라네그람시랑도 나가 선생이라고박기평군앞으로 잘 배우시면서 나 좀 가르쳐주소나도 가르치면서 배워갈랑께선생님이 두 손을 모아 맞잡더니 허리를 굽혀 천천히 절을 했다난 그냥 눈물이 핑 돌아서 눈 바닥에 털썩두 손을 짚고 절을 올렸다무명옷이 추워서인지 마음이 시려서인지 어깨가 떨려왔다.” (200-201)

 

2024선생이 존재하는가를 질문하면 대답이 옹색해진다이렇게 합리화를 하거나 구색에 맞춰 난처함을 벗어나려 한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없다.”

 

하지만 필자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교육계의 실상은 이게 팩트다또 하나왜 스승이 존재하지 않지를 묻는다면 스승을 만드려는 제자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결국 상호관계의 파괴가 이 지경을 만든 거다작가가 소개한 수그리 선생의 글이 벼락인 이유가 무엇인가그 답은 이렇다.

제자에게 절하는 선생!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 법하고박물관에서나 혹 발견될 수 있는 이야기다이 내레이션을 너무 단순하게그러나 솔직하게 보고한 작가의 글을 보면서 가난한 동강이었지만하늘이 내려준 보석같은 사람이라는 선물들이 작가를 수놓게 만든 주인공들이었음을 재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눈물의 기도에 이 글이 담겨 있다.

작가는 종업식이 있었던 2월의 어느 날을 추억한다일년의 성적표를 받아드는 날성적표를 보니 가 둘이고나머진 다 였다행동 평가도 준수했다우등생을 발표할 때반 친구들은 모두가 작가를 지목하며 기대감을 높였다하지만 우등상은 다른 여자 친구에게 돌아갔다친구의 성적은 가 네 개고, ‘는 세 개 뿐인데 정작 우등상은 친구에게 돌아갔다친구의 아버지가 학교 신축 관사에 큰 기부금을 낸 것이 이유였다그렇게 우등상은 사라졌다작가는 솟구치는 서러움과 억울함을 짓누르고 울지 않았다그날 밤엄니는 촛불 아래에서 유난히 긴 묵주 기도를 드리고 성모경주기도문과 영광송을 돌렸다잠든 양 뒤척이는 내게 오셔서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

 

하느님나는 좋은 엄마가 못 되어라학교 한 번 못 찾아가 보고 저런 억울한 일을 당했는디 나가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어라그랑께 못난 이 어미는 대신해 하느님이 평이 좀 지켜주씨요하느님 쓰실 아그인께 좀 보살펴주씨요.”

 

작가는 엄니의 울음 섞인 기도를 들으며 나도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기도했다.

 

하느님울 엄니 좀 챙겨주씨요다치지 말고 아프지 않게 해주씨요난 아무리 해도 좋은 아들이 못 되어라늘 엄마 걱정만 시키고 눈물만 안 주요그랑께 하느님이 불쌍한 울 엄니 좀 돌봐주씨요나가 커서 사제가 되면 평생 하느님을 챙겨드릴께라” (223-224)

읽는 나도 울었다감동과 사랑의 소리가 크게 다가와서이런 부모와 자식이 세상을 살린다적지 않은 소음으로 선거철만 되면 스트레스 천만의 차량에서 울려퍼지는 자랑질과 메가폰을 들고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 지르는 천박한 자들이 세상을 행복하는 게 아니라이런 소박한 믿음으로 잇대어 사는 이들이 세상을 밝게 한다작가의 어린 시절그의 엄니는 유대인들이 전하는 속담처럼 하나님이 모든 곳이 계실 수 없어 만들어 파송한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하루는 엄니가 햇살 좋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수확한 녹두랑 팦이랑 수수를 부어 당글게로 고르게 펼쳐놓고 내게 일감을 맡기셨다나는 최선을 다해 긴 장대를 들고 새들을 쫓았다하지만 새들고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내가 장대를 들고 치는 곳을 피해 가을 걷이를 하고 말리는 곡식을을 잘도 쪼아 먹었다하루 종일 수고하여 삭신이 쑤실 정도였는데 노을이 질 무렵일나갔다가 돌아온 엄니가 이렇게 말했다.

 

알곡들 잘도 말렸다근디 놀멘 하제이그리도 열심히 쫓아다닌다냐아새들도 좀 묵어야제.”(16)

 

하루 종일 엄니 말대로 죽자 새들을 쫓았건만 엄니는 칭찬하지 않고 적당히 하지 뭐 그리 열심히 쫓아냐고 타박하는 말처럼 들려 삐져 있던 내게 오셔서 당부했다.

 

평아오늘 애썼는데 서운했냐아근디 말이다열심이 지나치면 욕심이 되지야새들도 묵어야 사니께 곡식은 좀 남겨두는 거란다갯벌에 꼬막도저수지에 새뱅이도 씨마를까 남겨두는 거제이머루도개암도산짐승들 먹게 남겨두는 거고동네 잔치 음식도 길손들 먹고동냥치도 먹게 남겨두는 것이제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평아사람이 말이다할 말 다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억울함도분함도 좀 남겨주는 거제잘 한 일도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믄 안 되제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게시니께.”

 

작가는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내 등을 다독다독 쓸어주는 엄니의 손길이 다숩기만 해서분하고 서운한 마음에 토라졌던 내가 부끄러워서나는 이불을 당겨쓴 채로 눈물을 삼켰다.”

 

저 낡은 소리는 어떤 상처를 읽은 것이다” (나희덕어두워진다는 것은창비, 80)

 

몇 년 전에 읽은 시인의 이 시어를 만났을 때엄마가 생각났다그도 그럴 것이 서재에 아침이 밝아오면 예외없이 난 턴테이블을 켠다보물처럼 여기는 LP를 올려놓고 음악을 듣는다보관을 잘 하는 편이지만소장하고 있는 LP 중에는 흠짓이 난 것들이 몇 된다그때마다 찌직거리는 기계음이 거칠지만 난 이 소리를 좋아한다왜 좋아할까굳이 답하자면 엄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그러니 나희덕이 말한 시어가 내게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왔겠는가 재론의 여지가 없다엄마는 영원한 고향이다특히 어려웠던 시절을 사뭇치게 아름답도록 만들어주는 마술적인 힘이 엄마에게 있다나는 본서를 평하면서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다그렇다작가의 어머니는 하나님이 작가를 위해 파송한 대리자인 게 맞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필채로 기록한 자전적 수필을 읽으면서 박노해라는 작가의 삶이 반추되었다이데올로기가 첨예하던 시절적지 않은 수난과 고난의 질곡을 걸어야 했던 작가는 어찌보면 살아 있는 현대사의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기득권과 에 늘 서 있던 어떤 이들은 작가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상적 불온 분자로 매도하며 주홍글씨를 새겨 놓은 장본인으로 작가를 평가한다대한민국이 사상적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지만결코 그렇지 않았던 시기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작가는 그렇게 빨간줄이 그어진 채로 아프고 시린 스티그마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야 했다그러나 역설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작가의 글을 대할 때마다그를 평가하는 자들이 혹평한 이데올로기적인 각인에서 자유롭다동의하지 않는다이런 이유 때문에 작가의 글이 나올 때마다 목사로 살고 있는 나는 적지 않은 위로와 감동과 기독교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은혜(?)를 받곤 한다필자는 동시에 작가의 글에 대한 북리뷰를 작성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아니조금 더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놓치고 싶지 않다서평을 쓰고 있는 본 서에서 느낀 은혜는 여타 다른 작가의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나다간단히 몇 내용만을 언급했지만실상이 그렇다나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사랑을 만났다산상수훈을 배웠다이타적인 삶을 배웠다그리고 복음의 황금율도 배웠다오래 전에 읽었던 레베카 솔닛의 글을 기억한다그녀의 글에 한 인용문이 담겨 있다.

 

우리 영혼의 보석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우리는 지금 세계를 갈라놓아 불필요한 갈등에 빠지게 한 백색의 이분법을 거부해야 한다.” (레베카 솔닛어둠 속의 희망창비, 135.)

 

작가의 글을 백색의 이분법적인 색깔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글에 접근하는 순간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고우둔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까발려 질 것인지 나는 확신한다.

본 서는 가난했던 남도의 한 조그마한 촌에서 성장하면서 울고 웃었던 작가의 아름다운 서사다글감에 감탄하자속내음 때문에 행복해 하자내 어린 시절도 글을 읽으며 담아내자이 책 독서의 목적성이다수전 손택은 거침없이 오늘의 무감각을 이렇게 독설했다.

 

우리 문화는 무절제와 과잉 생산에 기초한 문화다그 결과우리는 감각적 경험의 예리함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현대 생활의 모든 조건-물질적인 풍요걷잡을 수 없는 혼잡함-이 우리 감각 기관을 무디게 만드는 데 한 몫 거든다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우리는 더 잘 보고잘 듣고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수전 손택해석에 반대한다도서 출판 이후, 34)

 

작가의 글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평자가 단언한다.

 

눈물 꽃 소년은 우리들의 어려웠던 시절 누구나 공감했던 감각적 경험의 예리함을 되살려줄 것이다또 하나필자는 현직 목사이기에 첨부한다본 서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은혜)를 공급해 준다많은 범인(凡人)들이 이 은혜에 동참해 보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