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잃어버린 원형의 것들이, 인간성의 순수가, 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는 흙가슴의 사람들이 바로 얼마 전까지 있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나의풍경이었다.” (242쪽) 작가가 글을 빠져 나오면서 쓴 전체 글감의 맥(脈)이다. 이 글을 접하다가 울컥했다. 작가의 고백이 이제 이순(耳順)의 중반기에 들어선 필자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육십 평생을 산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예외없이 가슴 시린 풍경을 갖고 있다. 표할 수 있든지, 그러지 못하든지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슴 한 켠에 이런 흙가슴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움켜 쥐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푸르고 푸르른(내 감성의 소회다.) 이야기를 연이어 풀어놓는다. “세상이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워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 우리는 우울과 혐오와 무망(無望)의 감정에 휩싸여 있다.” (244쪽) 그래서 그런가, 필자는 작가가 표현한 ‘흙가슴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단어가 너무 정감 있게 다가왔다.
사순절을 지나고 있는 어느 날, 교회력에 따라 주어진 성서일과를 접했는데 소스라치게 놀란 구절이 나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마가복음 14:72절을 공동번역이 이렇게 기술한다.
“바로 그 때에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예수를 부인한 뒤의 베드로의 반응을 마가복음 기자가 표현한 글이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부인을 예고했던 예수의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나서 이윽고 반응했다.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I fell to the ground and cried bitterly.) 작가의 말대로 이 시대의 비극과 재앙은 독해짐이다. 사나워짐이다. 천박해짐이다. 육신의 병듦이 아니라, 불치의 상태에 이른 영혼의 병듦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혼이 병든 영역에 주어지는 결과물은 우울과 혐오와 소망을 갖지 않는 무감각의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비극이다. 백약이 무용지물이다. 이런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중병을 치료하는 처방전을 썼다. 본 서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난했지만 너무 아름다운 서사들을 빼곡이 추억하며 글 속에 담아 놓았다. 그 한 올 한 올이 나에게는 주옥같은 선물로 다가왔다. 그가 내놓은 주옥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작가 스스로가 피력한 대로 칠십 성상을 바라보는 오늘의 본인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보석같은 사람들의 수고로 조각된 선물임을 주저없이 밝힌다. 평자(評者)는 글을 읽는 내내, 작가의 글과 여행하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나를 감동의 포로로 만들어 옴짝 달싹하지 못하게 구속한 내용들은 지천이다. 지면 관계 상 몇 몇만 소개하는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 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임시 담임을 만났던 『수그리 선생』에 대한 추억담을 소개한다. 선생은 한 학기만 작가의 학교에서 근무하며 교직 생활을 했는데 언제나 학생들의 말을 겸허하게 들어주며 머리를 잘 숙이는 버릇이 있어 동무들이 ‘수그리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단다. 마침 수그리 선생이 전근을 떠나는 날이었다. 그날, 작가와 선생이 주고 받은 대화는 글을 읽는 내게 벼락과 천둥소리로 다가왔다.
“사람이 말이네. 단 하나 알아야 할 그것도 모르는 부끄러운 사람이 ‘나’라네. 그람시랑도 나가 선생이라고…. 박기평군, 앞으로 잘 배우시면서 나 좀 가르쳐주소. 나도 가르치면서 배워갈랑께. 선생님이 두 손을 모아 맞잡더니 허리를 굽혀 천천히 절을 했다. 난 그냥 눈물이 핑 돌아서 눈 바닥에 털썩, 두 손을 짚고 절을 올렸다. 무명옷이 추워서인지 마음이 시려서인지 어깨가 떨려왔다.” (200-201쪽) 2024년, 선생이 존재하는가를 질문하면 대답이 옹색해진다. 이렇게 합리화를 하거나 구색에 맞춰 난처함을 벗어나려 한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없다.” 하지만 필자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교육계의 실상은 이게 팩트다. 또 하나, 왜 스승이 존재하지 않지를 묻는다면 스승을 만드려는 제자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상호관계의 파괴가 이 지경을 만든 거다. 작가가 소개한 ‘수그리 선생’의 글이 벼락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 답은 이렇다. 제자에게 절하는 선생!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 법하고, 박물관에서나 혹 발견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내레이션을 너무 단순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보고한 작가의 글을 보면서 가난한 동강이었지만, 하늘이 내려준 보석같은 사람이라는 선물들이 작가를 수놓게 만든 주인공들이었음을 재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눈물의 기도』에 이 글이 담겨 있다. 작가는 종업식이 있었던 2월의 어느 날을 추억한다. 일년의 성적표를 받아드는 날, 성적표를 보니 ‘우’가 둘이고, 나머진 다 ‘수’였다. 행동 평가도 준수했다. 우등생을 발표할 때, 반 친구들은 모두가 작가를 지목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우등상은 다른 여자 친구에게 돌아갔다. 친구의 성적은 ‘우’가 네 개고, ‘수’는 세 개 뿐인데 정작 우등상은 친구에게 돌아갔다. 친구의 아버지가 학교 신축 관사에 큰 기부금을 낸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우등상은 사라졌다. 작가는 솟구치는 서러움과 억울함을 짓누르고 울지 않았다. 그날 밤, 엄니는 촛불 아래에서 유난히 긴 묵주 기도를 드리고 성모경, 주기도문과 영광송을 돌렸다. 잠든 양 뒤척이는 내게 오셔서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 “하느님, 나는 좋은 엄마가 못 되어라. 학교 한 번 못 찾아가 보고 저런 억울한 일을 당했는디 나가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어라. 그랑께 못난 이 어미는 대신해 하느님이 평이 좀 지켜주씨요. 하느님 쓰실 아그인께 좀 보살펴주씨요.” 작가는 엄니의 울음 섞인 기도를 들으며 나도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울 엄니 좀 챙겨주씨요. 다치지 말고 아프지 않게 해주씨요. 난 아무리 해도 좋은 아들이 못 되어라. 늘 엄마 걱정만 시키고 눈물만 안 주요. 그랑께 하느님이 불쌍한 울 엄니 좀 돌봐주씨요. 나가 커서 사제가 되면 평생 하느님을 챙겨드릴께라” (223-224쪽) 읽는 나도 울었다. 감동과 사랑의 소리가 크게 다가와서. 이런 부모와 자식이 세상을 살린다. 적지 않은 소음으로 선거철만 되면 스트레스 천만의 차량에서 울려퍼지는 자랑질과 메가폰을 들고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 지르는 천박한 자들이 세상을 행복하는 게 아니라. 이런 소박한 믿음으로 잇대어 사는 이들이 세상을 밝게 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 그의 엄니는 유대인들이 전하는 속담처럼 ‘하나님이 모든 곳이 계실 수 없어 만들어 파송한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하루는 엄니가 햇살 좋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수확한 녹두랑 팦이랑 수수를 부어 당글게로 고르게 펼쳐놓고 내게 일감을 맡기셨다. 나는 최선을 다해 긴 장대를 들고 새들을 쫓았다. 하지만 새들고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장대를 들고 치는 곳을 피해 가을 걷이를 하고 말리는 곡식을을 잘도 쪼아 먹었다. 하루 종일 수고하여 삭신이 쑤실 정도였는데 노을이 질 무렵, 일나갔다가 돌아온 엄니가 이렇게 말했다. “알곡들 잘도 말렸다. 근디 놀멘 하제이, 그리도 열심히 쫓아다닌다냐아. 새들도 좀 묵어야제.”(16쪽) 하루 종일 엄니 말대로 죽자 새들을 쫓았건만 엄니는 칭찬하지 않고 적당히 하지 뭐 그리 열심히 쫓아냐고 타박하는 말처럼 들려 삐져 있던 내게 오셔서 당부했다. “평아, 오늘 애썼는데 서운했냐아. 근디 말이다.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이 되지야. 새들도 묵어야 사니께 곡식은 좀 남겨두는 거란다. 갯벌에 꼬막도, 저수지에 새뱅이도 씨마를까 남겨두는 거제이. 머루도, 개암도, 산짐승들 먹게 남겨두는 거고. 동네 잔치 음식도 길손들 먹고, 동냥치도 먹게 남겨두는 것이제. 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평아, 사람이 말이다. 할 말 다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 억울함도, 분함도 좀 남겨주는 거제. 잘 한 일도, 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믄 안 되제. 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 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게시니께.” 작가는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내 등을 다독다독 쓸어주는 엄니의 손길이 다숩기만 해서, 분하고 서운한 마음에 토라졌던 내가 부끄러워서, 나는 이불을 당겨쓴 채로 눈물을 삼켰다.” “저 낡은 소리는 어떤 상처를 읽은 것이다”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은』, 창비, 80쪽) 몇 년 전에 읽은 시인의 이 시어를 만났을 때, 엄마가 생각났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재에 아침이 밝아오면 예외없이 난 턴테이블을 켠다. 보물처럼 여기는 LP를 올려놓고 음악을 듣는다. 보관을 잘 하는 편이지만, 소장하고 있는 LP 중에는 흠짓이 난 것들이 몇 된다. 그때마다 찌직거리는 기계음이 거칠지만 난 이 소리를 좋아한다. 왜 좋아할까? 굳이 답하자면 엄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희덕이 말한 시어가 내게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왔겠는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엄마는 영원한 고향이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을 사뭇치게 아름답도록 만들어주는 마술적인 힘이 엄마에게 있다. 나는 본서를 평하면서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렇다. 작가의 어머니는 하나님이 작가를 위해 파송한 대리자인 게 맞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필채로 기록한 자전적 수필을 읽으면서 박노해라는 작가의 삶이 반추되었다. 이데올로기가 첨예하던 시절, 적지 않은 수난과 고난의 질곡을 걸어야 했던 작가는 어찌보면 살아 있는 현대사의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득권과 ‘갑’에 늘 서 있던 어떤 이들은 작가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상적 불온 분자’로 매도하며 주홍글씨를 새겨 놓은 장본인으로 작가를 평가한다. 대한민국이 사상적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던 시기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작가는 그렇게 빨간줄이 그어진 채로 아프고 시린 스티그마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역설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작가의 글을 대할 때마다, 그를 평가하는 자들이 혹평한 이데올로기적인 각인에서 자유롭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작가의 글이 나올 때마다 목사로 살고 있는 나는 적지 않은 위로와 감동과 기독교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은혜(?)를 받곤 한다. 필자는 동시에 작가의 글에 대한 북리뷰를 작성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아니, 조금 더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놓치고 싶지 않다. 서평을 쓰고 있는 본 서에서 느낀 은혜는 여타 다른 작가의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나다. 간단히 몇 내용만을 언급했지만, 실상이 그렇다. 나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사랑을 만났다. 산상수훈을 배웠다. 이타적인 삶을 배웠다. 그리고 복음의 황금율도 배웠다. 오래 전에 읽었던 레베카 솔닛의 글을 기억한다. 그녀의 글에 한 인용문이 담겨 있다. “우리 영혼의 보석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세계를 갈라놓아 불필요한 갈등에 빠지게 한 백색의 이분법을 거부해야 한다.” (레베카 솔닛, 『어둠 속의 희망』, 창비, 135쪽.) 작가의 글을 백색의 이분법적인 색깔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 글에 접근하는 순간,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둔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까발려 질 것인지 나는 확신한다. 본 서는 가난했던 남도의 한 조그마한 촌에서 성장하면서 울고 웃었던 작가의 아름다운 서사다. 글감에 감탄하자. 속내음 때문에 행복해 하자. 내 어린 시절도 글을 읽으며 담아내자. 이 책 독서의 목적성이다. 수전 손택은 거침없이 오늘의 무감각을 이렇게 독설했다. “우리 문화는 무절제와 과잉 생산에 기초한 문화다. 그 결과, 우리는 감각적 경험의 예리함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현대 생활의 모든 조건-물질적인 풍요, 걷잡을 수 없는 혼잡함-이 우리 감각 기관을 무디게 만드는 데 한 몫 거든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도서 출판 이후, 34쪽) 작가의 글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평자가 단언한다. 『눈물 꽃 소년』은 우리들의 어려웠던 시절 누구나 공감했던 감각적 경험의 예리함을 되살려줄 것이다. 또 하나, 필자는 현직 목사이기에 첨부한다. 본 서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은혜)를 공급해 준다. 많은 범인(凡人)들이 이 은혜에 동참해 보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