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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2024-06-11 10:17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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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김소영
ㆍ출판사 테라코타
ㆍ작성일 2023-03-23 09:26:52

 

김소영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를 읽고 (책 발전소 테라코타 간, 2022년)


“우리 세대는 조부모와 부모 세대가 힘겹게 일군 안정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p,211)

저자는 서평가 금정연이 쓴 『그래서 …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를 리뷰하면서 이렇게 사족을 달았다. 나는 이 글을 사무칠 정도의 절절함으로 가슴에 담았다. 글이 주는 역설이 놀라워서였다. 금정연 작가가 1981년생이니까 조금 멀리 넉넉하게 잡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부모 세대에 들어가는 구닥다리 꼰대 세대다. 나를 비롯한 나의 부모세대만큼 치열한 시대를 살았던 자들이 또 어디에 있겠나 싶다. 풍요로움, 낭만, 멋짐 등등이라는 형용사를 명사화 한 단어들이 자리를 잡을 틈이 없이 허리띠를 졸라맸던 세대가 내 세대와 부모 세대다. 그런 우리들을 향하여 금정연 작가는 이 단어를 쓰며 설명했다.

“힘겹게 일군 안정성”의 세대라고.     

존중 받는 느낌이라 잠시 행복했지만 안정성은 내 세대에 사치였다. 그런데 금 작가의 말은 맞다. 왜? 아무리 가난해도 내 시대였지만 우리 세대는 정서적 안정성을 추구하려는 멋이 있었다. 희망사항이었지만 나름 낭만도 생각했다. 그러니 최백호씨가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를 발표했을 때 뒤늦게라도 열광하지 않았겠는가! 저자 김소영은 금정연의 글을 읽고 그의 글 중에 이 글이 남았는지 사족을 인용했다. 다시.

“안정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세대”라고. (p,211)

필자의 아들은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의 주인공이다. 별반 다르지 않은 1990년생이니까. 아들과 사석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조금의 진척을 갖지 못한다. 부자지간이라는 원래 친해지기 어려운 세대적 갈등이 주원인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과정도 무시하지 못한다. 아들에게 정서적 안정성을 놓치지 말라 말하면 안정성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시니컬하다. 그러니 진솔한 대화가 될 리 없다.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한 아버지라고 나름 자부했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견훤이다. 이것은 이론적인 설명이나 역학적, 공학적인 풀이로 원만히 해결될 수 있는 따위가 아니기에 나 또한 더 이상 이런 대화로 아들에게 정력을 소비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지 오래다. 그렇다고 타협이나 굴복한 것은 아니다. 오늘의 세대는 분명히 선배 세대가 힘겹게 일군 안정성이라는 너무 고귀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저자는 타라 웨스토오버의 작품인 『배움의 발견』을 소개한다.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는 저자가 독서한 책을 리뷰 한 글이기에 여러 책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배움의 발견』도 한 축이다. 필자는 본서 독서를 마치고 4월 독서 목록에 담아 놓은 꼭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 타라의 책을 올렸다. 모르몬교를 믿는 대단히 엄격한 종교교리주의자 부모 밑에서 성장한 타라는 성장 시기에 상상할 수 없는 종교적 폭력을 당했다. 시한부 종말을 믿는 부모 밑에서 종교적 원리주의자가 갖고 있었던 심각한 정신질환적인 압박에 시달렸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서 공교육을 받게 되었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저자는 타라를 평했다.
어려서 공교육과 현대 의학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부모로 인해 학교와 병원을 가본 적이 없이 영적 교육과 치료라는 이름으로 억압당했던 시절, 배우려고 하면 더 핍박을 받던 가족 분위기, 성(性)에 대해 눈을 떴을 때, 다른 이성이 손을 잡자 자신이 창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벽증이 생긴 자신의 삶은 다름 아닌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을 통해 자행된 폭력이요, 겁박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과 결별하기로 한 타라는 비로소 홀로 서기에 성공하고 역사학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저자가 소개한 이 책을 서평 접촉에 만족하지 않고 꼭 읽어보리라 마음먹게 한 인용은 바로 이것이었다.

“책의 말미에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p,189)

오래 전 읽은 수전 손택이 전한 말에 밑줄을 그은 적이 있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시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말-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마음산책, p,28)

필자도 책을 낼 때마다 수전 손택의 말을 담고 글을 썼다. 아마 타라 역시 ‘누가 역사를 쓰지? 바로 나야.’라고 항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종교적인 원리주의자들이었던 가족에  의해 당했던 가공할만한 폭력의 한 복판에서 체휼했던 고통의 끝자리에서 투쟁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성공한 역사학자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기 세계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정황’ (sitz im leben)이라는 자리를 회피하지 않았고 투쟁하며 결별하려는 용기가 있었기에 주어진 선물이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고 보면 참담하다고 생각되는 일체의 일들이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나로 하여금 배우게 하는 학생임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임을 다시금 다잡이하게 한다. 더불어 타라의 용기는 현직 목사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더 더욱 폭력적인 괴물이 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길라잡이의 역할까지 해 준다. 
본서에서 하고픈 부연 설명은 많지만 약하기로 하고 한 문장만 더 살펴보려 한다.

“인생은 때론 ‘극단적인 비일상’을 추구하며 즐기는 것이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런 나를 사랑함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pp,113-114)

저자가 여행을 예찬한 것에 대한 근거다. 나 역시 여행이라는 테제가 나와 타인을 알아가는 대단히 중요한 수단임에 동의한다. 문제는 ‘극단적인 비일상’에 대한 불편함이다. 평생 목사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던 이라 대단히 큰 유혹으로 다가오는 ‘극단적인 비일상’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기에 이런 비일상은 나에게는 대단히 낯설다. 만에 하나, ‘극단적인 비일상’이 인생을 알아가는 유일한 통로요 방법이라면 목사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삶의 굴(屈) 안에 있는 자가 맞다. 자기 합리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또 이런 이유에 항거하기 위해 나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나와 또 나른 나인 너’(마틴 부버의 일침)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기 위해 더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 같다. 저자는 이 챕터에서 소설가 김영하의 촌철살인을 하나 소개한다.

“여행은 영감을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p,111)

100%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욕심을 내는 것은 과하지 않을 것 같아 나만의 고집을 피우고 싶다. 나는 영감(inspiration) 얻기와 익숙한 것들과 유리됨, 이 두 가지를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금년은 교회를 개척하고 난 뒤에 두 번 째 맞는 안식년이다. 교회를 개척할 때 안식년이 되면 6개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하지만 섬기는 교회의 제반적 상황을 전제할 때 6개월을 비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금년 초 공동회의에서 1개월의 안식월을 갖겠다고 피력했다. 지난 목양의 세월, 마치 메도디스트(methodist)처럼 규격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삶을 살려 치열하게 노력했다. 이런 이유로 정서적인 호흡이 가빠지는 일을 수없이 경험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번 안식의 기간을 통해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 보려 한다. 김영하 작가와는 스펙트럼이 조금 다르지만, 그래야 목사라는 직을 갖고 사는 나는 포기할 수 없는 영감도 얻을 수 있기에 말이다.
얼마 전, 기대했던 요조의 산문을 읽으며 2%의 부족함 때문에 많이 아쉬웠는데, 유명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저자이기에 반대로 별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던 나는 반성했다. 저자의 깊은 성찰과 독서를 통한 통찰 때문에. 그녀가 소개한 21권의 책들을 다 섭렵할 수는 없겠지만 그 흔한 SNS의 알고리즘을 통해 추적한 것이 아닌 순수하게 아날로그식의 현장인 글 읽기를 통해 만난 김소영 작가의 북 리뷰는 내게 가뭄 속에서 맞은 단비였다. 감사한 마음에 목사이기에 그녀에게 줄 선물을 화살기도로 대치했다. 

주여, 작가에게 지속적인 건강과 선한 영향력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