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터 이야기

제목사순절 둘째 주일 아침에2025-03-15 11:26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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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몰려왔습니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월요일부터 수요일 아침까지는 오전 기온이 영하 5도 안팎으로 떨어진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2025년 마지막 추위일 것입니다. 꽃샘추위가 몰려왔지만, 계절의 여운은 정직하고 정확합니다. 지난 주간에 주차장에 심어놓은 벚꽃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꽃망울이 커지고 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게 제 일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번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3월 하순이 되면 부끄러운 듯 화사한 꽃을 터뜨릴 것이 분명합니다. 계절은 정직합니다.

최재천 교수가 발간한 호모 심비우스-양심을 만났습니다. 이어령 박사 이후,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최 박사의 글을 읽다가 대리만족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글 중에 만난, 촌철살인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공평(eqality)이 양심(conscience)을 만나면 비로소 공정(equity)이 된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킵니다.”

2023년 서울대학교 후기 졸업식 축사를 맡은 최 교수가 후배들에게 직설한 문장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그룹이라면 더더욱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양심에 저촉되지 않는 지성인들이 되라는 선배의 애정 어린 충고가 글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여기에 최 교수가 쓴 공정은 다른 용어를 빌린다면 올바름’(correctness)입니다.

사순절, 둘째 주일 아침에 주님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소회가 내게 임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3년 남짓 공생애 사역하셨던 주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삶이 무엇이었지? 질문을 던지고 또 깊이 생각한 뒤에 자답을 내놓았습니다.

공정한 삶올바른 삶이었습니다.

갈릴리에 살고 있던 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신 것도, 사마리아와 데가볼리 같이 버려진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의 손을 잡고 위로하셨던 사역도, 산헤드린 종교 기득권자들과 맞서 싸우신 것도, 무자비한 로마 통치 권력에게 비폭력 저항으로 대항하신 것도 공정 즉 올바름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렇듯 공정 그 자체인 올바른 삶을 사신 주군이었습니다.

2025년 초봄, 공정이라는 코드가 주는 메시지와 문자적 함의가 매우 엄중하다는 것을 인지해 봅니다. 공정하지 않으니 상식적이지 않으며, 상식적이지 않으니 공정하지 않은 빌라도의 소리가 공정의 소리로 둔갑해도 전혀 아파하지 않는 그 아픔이 도배하고 있는 게 오늘입니다. 한 주간, 벚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행복했습니다. 나는 조만간 벚나무 가지에서 망울을 터뜨리고 나올 화사한 벚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내가 사는 세상에 만개하는 기쁜 봄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순절 둘째 주일 아침에, 이런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행복한 2025년이 봄이 되기를 화살기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