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혹서기를 이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는? | 경배와 찬양 (WORSHIP)● 찬송가: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36장) ● 복음성가: 내 갈급함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예배하는 이에게 ● 본문 : 요한복음 4:14-23 1)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2)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죄성은 어디서 들어왔음을 알 수 있는가? 3) 적용하기 ⓵ 오늘 나는 종교적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 진실한 엔카운터(만남)가 있는가? ⓶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드릴 수 있는가? ⓷ 삶의 모든 순간에, 인생의 길이요, 생명 되시는 주님께 더욱 간절히 예배하자. | 사역하기 (WORK) 1. 찬양: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찬양 (복음성가, 찬송가 공히 한 곡 씩) 2. 아이스 브레이크 (얼음 깨기) 3. 기도: 인턴부터 시작하여 주마다 셀 원들이 순서 맡음 (철저하게 기도문을 준비할 것) 4. 나눔: 한 주간의 삶에 대한 나눔을 실시–미리 준비한 지체가 진행, 3-5분을 넘지 않게 한다. 5. 간증: 사역자가 있으면 실시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됨) 6. 말씀 증거: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 피드백 7. 적용: 말씀에 비추어 한 주간 살아야 할 내용을 간단하게 제시.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지침 진행 8. 중보기도 제목 ⓵ 지역 셀에서 중보 하는 태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⓶ 2023년 세인교회의 구체적인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 ⓷ 여름 사역(성경학교, 수련회 등등)을 위해 중보하기 ⓸ 담임목사의 안식주간을 위해 중보하기 9. 치유기도 : 합심치유기도 - 대상자 앞으로 초청 10. 헌금 및 헌금 기도 : 셀 리더 11. 축복기도 : 셀 리더
사역 내용
1. 선정된 태신자들의 이름 중보 테이블에 올려 공유하기 2.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하기 (김수연, 최지훈, 지에스더) 3. 담임목사 안식 주간, 한 번씩 교회 들려 돌보고 기도하고 가기 4. 수요 예배 지체들 독려하여 참석하도록 인도하기
| 설교요약 (SUMMARY)본론) 우리는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갈망과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목마릅니다. 욕심도 끝이 없고, 만족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마름을 겪는 순간 속에서도 고민하여야 합니다. 나는 무엇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목마름을 해소해 나아갸야 하는가. 그러한 의미에서 먼저 요한복음 4장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갈릴리를 가는 지름길은 그 가운데 있는 사마리아 마을 수가를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지나가면 빨리 갈 수는 있지만, 웬만해서는 그 길로 지나가지 않고 철저히 멀리 돌아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사마리아 민족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3절과 4절을 통해 사마리아 수가로 자원하여 방문하셨습니다, 이 곳은 인생의 목마름 가운데 있었던 수가성 여인이 있던 곳입니다. 목마른 인생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여정 안에는 많은 비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수가성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 요한복음 4장 16-18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오늘의 수가성 여인은 한마디로 하면, 열심히 행복을 찾아 노력했지만, 결국 어떠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던 사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수가성 여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여인이 안타깝다. 여인이 불쌍하다.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도 결혼하기 전에는 분명 자신이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18절로 보아 그녀에게는 다섯 신랑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결혼을 실패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결혼은 첫 번째 결혼과 다른 행복을 찾으려 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첫 번째 결혼과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대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 행복을 포기하기는 모든 것이 억울했을 겁니다. 그래서 세 번째 남편을 찾고 만났을 것입니다. 두 번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세 번째 결혼은 남다른 각오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됩니까? 그 결혼마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끝내 다섯 째 남편까지 찾았으나 여인이 그려왔고 기대했던 행복은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은 어떤 의미겠습니까? 실패를 그렇게 수없이 했음에도 계속적으로 남편을 찾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녀에게 남편은 자신의 행복을 채워줄 수 있다는 여전한 갈망과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도 수가성의 여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만족이 어디서 오는지, 갈망이 어디서 오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수가성 여인의 남편과 같은 행복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의 존재가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내 만족과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어떤 존재나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마음은, 인류 최초 하나님 외에 다른 갈망으로 자신들의 만족을 채우려고 했던, 아담과 하와의 마음 안에 있던 죄성과 같은 갈망입니다. 창세기 3장 3-6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떠한 걱정과 염려보다 모든 것이 보장되어 있었던 감격적인 나날들의 연속일 겁니다. 하지만 뱀의 간교가 들어옴으로,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난 뒤, 인간은 이 죄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갈망과 목마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육의 어리석음은 한 번의 실패에 있지 않습니다. 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실패를 했어도. 온전히 그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내 안에 버리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한 미련은 잘못된 갈망과 욕망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발전소와 같습니다. 그래서 미련이 있는 마음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출발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실패라는 자리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미련의 마음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 지향적이기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미련이 가득한 마음의 특징은 언제나 후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 후회는 예전 잘못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후회가 많은 인생을 바라보면, 늘 가슴 한편에 무거운 짐을 달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책감과 자기 비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문의 수가성 여인의 삶을 봐도 같습니다. 그녀의 삶은 후회가 가득한 삶입니다. 다섯 남편이나 얻었으나 아직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삶의 후회와 미련과 짐이 가득한 여인에게 오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번 더 요한복음 4장 16-18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에게 남편에 대하여 질문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질문에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녀의 삶은 어떤 소망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 내 삶은 광야와 사막처럼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가뭄과 같은 땅입니다. 사막처럼 타들어가는 목마름의 고통만 있습니다.” 라는 심정과 같은 대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맞다 너의 인생이 목마르다. 지금 있는 다섯 번째 남편도 너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결국, 목마름에 대한 대답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목마른 여인입니다. 목마름은 행복을 향한 갈망과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목마른 여인에게 찾아간 이유, 굳이 돌아가도 됐지만 이 사마리아를 찾아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함입니다.
본문말씀 요한복음 4장 14-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오늘 이 채워짐이 있기 전에, 사람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죄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여전히 모든 사람 안에 ‘목마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는 듯한 목마름 때문에, 하늘을 열게 되었습니다. 오늘 수가성 여인의 목마름은 하늘이신 예수님을 그 여인에게 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목마름과 같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처럼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해갈되지 않는 단순히 한 순간만 모면하는 이 우물을 길러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의 삶의 순간에도 이러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목마름을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여인에게 말씀하시는 비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바로 예배입니다.
※ 예배는 우리의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말씀 23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하늘 샘이 있는, 하늘 문을 여는 통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는 예배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곳은 여인이 알고 있던 것처럼 예배가 있는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 문이 열리는 예배가 있는 곳이 예루살렘이라는 장소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은 대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예루살렘 성전은 여전히 예배가 올려지고 있지만, 그 예배에는 신령과 진리가 없는 예배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갖 다른 갈망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들이 모인 예배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다른 갈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목마름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들의 예배 종교적인 예배 속에서 하늘 문이 열릴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모습들 때문에, 예수님은 목마른 여인에게 오셨습니다. 여인에게 해답으로 주신 것은, 인생가운데 타는 듯한 목마름이 결국, 예배라는 것, 하나님을 갈망한 예배만이, 우리의 인생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목마름이라는 것, 예배를 채우는 것은, 결국 진실됨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인체에 70%가 물입니다. 물은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있는 가장 큰 고통은 목마름과 갈증이 되는 것입니다. 배고픔도 있겠지만, 그것은 목마름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마름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 단 한 가지, 물만을 구하게 됩니다. 다른 어떤 음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물로만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 문을 여는 신령과 진리의 마음, 즉 정직한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예배자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예배자라는 것은 죄짓기 전의 아담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갈망하는 아담의 마음이 바로 예배입니다. 목마른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예배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코로나 엔데믹을 살아가는 이 때, 모든 영역에서 많이 변화된 일상 속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해야합니다. 엔데믹이 선포되면서, 모든 규제가 풀리면서, 이전의 습관들 때문에, 우리는 너무 많은 갈망들 때문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할 삶의 목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예배를 통해서 내 인생의 열쇠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늘 문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듯이, 우리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자의 정체성을 회복하여서, 예루살렘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만 아닌, 내가 있는 모든 곳이 예배의 처소가 되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곳들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시키는 것,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예배밖에 없습니다. 예배만이 답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예배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설교를 맺으려 합니다. 신명기 1장 31-33절입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모세는 자신의 고별설교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안아주셨던, 광야를 생각해냅니다. 33절의 고백처럼, 아무 것도 없었을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그때 주님께서는 안아주심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주님 한 분으로, 의지하며, 광야에서 승리했던 모습을 설교합니다.
사랑하는 세인교회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분, 예배를 사모하기를 소망하시는 분들은 광야로 나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광야는 모든 세상의 가치가 뒤바뀌는 곳입니다. 광야는 내 갈망은 온통 사라지고 영원한 영생수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만 생겨나는 곳입니다. 그분만이 내 삶을 공급하시고, 채우시고, 인도하시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진리를 알게 되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마름이 있는 광야로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 인생의 순간에 하나님이 내 삶의 답이요. 길이라는 진리를 깨달아, 어떠한 순간에도 예배를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