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3년 2월 26일 (넷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50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다가오는 봄에 들으면 내 감성과 이성을 행복하게 해 줄만한 음악이나, 책이나, 영화 소개하기  

 
경배와 찬양 (WORSHIP)
●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  복음성가: 이 땅 위에 오신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감정대로 살면
● 본문 : 창세기 26:34-35
1) 에서가 아내로 맞아들인 여인 세 명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는 사건을 연결시켜 보자.
⓵ 유딧 -
⓶ 바스맛 -
⓷ 마할랏 -  

2) 삼손과 에서가 갖고 있었던 공통분모를 성경적 내증 소개하며 나누어 보자.
⓵ 본문, 창세기 28:6-9
⓶ 사사기 15:3  

3) 적용하기
⓵ 나는 감정적인 신앙인인가? 아니면 균형 잡힌 신앙인인가?
⓶ 감정적인 신앙을 이기기 위한 방법을 토론해 보자.
⓷ 사순절 기간 동안 내 신앙의 여정을 하나씩 결단하여 나누고 기도하자.  

 
사역하기 (WORK)

1. 찬양: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찬양  (복음성가,  찬송가 공히 한 곡 씩)
2. 아이스 브레이크 (얼음 깨기)
3. 기도: 인턴부터 시작하여 주마다 셀 원들이 순서 맡음 (철저하게 기도문을 준비할 것)
4. 나눔: 한 주간의 삶에 대한 나눔을 실시–미리 준비한 지체가 진행, 3-5분을 넘지 않게 한다.
5. 간증: 사역자가 있으면 실시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됨) 
6. 말씀 증거: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 피드백
7. 적용: 말씀에 비추어 한 주간 살아야 할 내용을 간단하게 제시.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지침 진행
8. 중보기도 
⓵ 태신자 섬김에 최선을 다하고 그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임하도록
⓶ 셀 원들의 기도 제목을 위한 중보
⓷ 세인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⓸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한 중보기도 
9. 치유기도 : 합심치유기도 - 대상자 앞으로 초청
10. 헌금 및 헌금 기도 : 셀 리더
11. 축복기도 : 셀 리더

사역 내용

1. 사순절 기간 정해진 일일 사역 준수와 침묵의 피정을 위해
2. 수술한 교우들의 회복을 위해
3. 섬기는 피선교지 위해 합심 기도하기
4. 주일 셀 사역을 위해 서로 격려하기
5. 구제 사역에 누락되지 않도록 독려하기 
6. 담임목사의 목회 승리를 위해 중보하기


  

 
설교요약 (SUMMARY)
본론) 창세기 26장은 이미 살핀 대로 이삭의 가계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복이 계승될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가 담겨 있는 텍스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창세기 26장의 마무리 부분에 단 두 구절로 기록되어 있는 사족과도 같은 메시지는 이삭의 가계에 드리운 먹구름을 예고해주는 우울한 청사진과도 같습니다. 본문 34-35절을 다시 복기해 보겠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이삭의 장자인 에서가 40세에 결혼을 했다고 기자는 서술했습니다. 아버지가 결혼했던 나이와 동일하게 40세에 결혼을 했다는 것은 60세가 되어 에서와 야곱을 얻었으니까 이삭의 나이가 100세가 되었다는 것을 병행하여 알려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00세가 되었을 때, 며느리를 보았다면 정말로 기쁜 경사가 아닐 수 없는데 본문은 이삭과 리브가의 소회가 그 반대였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단어로 끝을 맺습니다. ‘근심이 되었더라’ ‘근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아’는 문자적인 의미가 ‘슬픔으로 야기된 고통’ 혹은 ‘쓰디쓴 마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왜 이삭과 리브가는 노년에 이런 아픔을 경험했을까요? 그 답을 34절이 밝혀줍니다. 장자가 부모의 뜻을 어기고 그토록 경계했던 이방 여인과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여자와 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여 자기의 혈족이 살고 있는 그 먼 밧단아람까지 엘리에셀을 보내 며느리 리브가를 구해왔던 것을 살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가계의 혈통을 순순하게 이어가고 싶었던 마음이었음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의 계획이 손자 대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에서가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들였기 때문입니다.

  헷 족속 출신의 여인인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부모에게 근심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헷 출신의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부모의 노쇠함으로 인해 의견을 존중하지 않은 탓이겠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행위였음을 송병현 교수는 자신의 주석에서 밝힙니다. ⓵ 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결혼을 주선했다. 당시의 풍습과 정서의 의하면 결혼은 부모가 주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서의 경우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해서 아내를 취한 불효적인 일이었다. ⓶ 할아버지 아브라함 시대부터 지속되어 오던 동족결혼의 전통을 버렸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친척들과 결혼했는데 에서는 친척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아내들을 찾은 것이었다. ⓷ 가나안 사람들과는 결혼하지 않는 집안의 명예와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결국 에서는 최소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창세기 주석”, 483.)
 
  송 교수는 에서가 하나님의 축복의 반열에서 완전히 배제된 자였음을 강력하게 피력한 주석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만 보면 송 교수의 해석이 나름 설득력이 있지만, 후에 살핀 창세기 28장의 한 구절에 도착하면 왜 에서가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고집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게 됩니다. 창세기 28:6-9절을 소개합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이 구절이 주는 시사점은 정말로 의미심장합니다. 창세기 28장은 야곱과 리브가가 짜고 에서가 차지해야 할 축복권을 빼앗은 뒤,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피신시킨 사건이후의 기사입니다. 에서가 어머니에게 받은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지 심정적으로 이해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에서는 어머니 리브가에게 앙심을 품고 어머니가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핀즉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것을 안 에서는 대단히 의도적인 불효를 벌였는데 세 번째 아내를 바로 아버지 이삭의 이복형이었던 이스마엘의 장자였던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로 들인 것입니다. 애굽에 뿌리를 둔 이복 고종사촌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며느리를 아내로 삼았던 것은 에서의 일탈이요 반항의 행위요 감정적인 맞대응이었습니다. 장자권을 소홀히 여겨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아버린 뒤에 얻은 아내들은 가나안 여인들이었고, 세 번째로 얻은 아내는 아버지의 축복권을 가로채도록 만든 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부모와 대적하기 위해 택한 또 다른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결국, 에서의 결혼 행위에서 한가지의 공통분모가 보입니다. 감정적으로 행동한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입니다. 자기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는 감정의 골이 폭발하여 선택한 에서의 결혼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는 창세기 91번째 강해의 레마를 찾아내야 합니다.

※ 감정적인 신앙의 몰입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대척점에 있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입니다.

  삼손에 대한 메시지 하나를 교우들과 다루겠습니다. 사사 중에 삼손은 최악의 사사였습니다. 절대로 사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었습니다. 삼손이 보여준 최악의 사례는 사사기 14-15장에 걸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으로부터 블레셋에게 압제를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은 나실인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태는 나실인 사사라는 이름과는 전혀 걸맞지 않은 랜덤의 인생을 살았던 대명사였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삶 자체가 전혀 신앙적이지 않았고, 도리어 세속적 가치의 대명사라고 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간 말종이었습니다. 삼손의 출발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블레셋 지역인 딤나로 내려가서 한 여인에게 빠지는 육욕의 희생제물이 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딤나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부모에게 말하자, 부모는 당연히 반대합니다. 하지만 삼손은 이미 그녀의 육신적인 매력에 빠져 있었기에 부모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떼를 써서 결혼을 강행합니다. 블레셋에는 ‘사디카’라는 결혼  예법이 있는데 신랑의 아버지가 신부가 살고 있는 동네로 결혼 지참금을 가지고 아들과 함께 가서 7일을 머물렀다가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결혼 예법입니다. 마노아는 마지못해 딤나로 아들과 함께 내려가 7일을 머물렀습니다.
 
  문제는 삼손이었습니다. 이방 땅에 7일을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못내 따분하고 낯설었던 삼손은 그 무료함과 서먹서먹함을 이기기 위해 하객과 삼손의 감시자로 온 블레셋 인 30명과 수수께끼 내기를 합니다. 내기라함은 패자는 승자에게 베옷 30벌과 겉옷을 30벌을 주기로 한 내기였습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삿 14:14) 수수께끼의 문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어려웠습니다. 결국 내기에서 패할 것 같았던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협박을 하여 답을 알아냈고, 그 결과 삼손은 패자가 됩니다. 결국 믿었던 아내에게 배신을 당하자 화가 난 삼손은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죄 없는 사람 30명을 죽이고 그들이 갖고 있었던 베옷, 겉옷 30벌을 취하여 내기 게임을 승자들에게 헌납합니다. 아내가 자기를 배신해서 내기게임에서 패배했다는 배신감과 분노로 인해 삼손은 첫 날 밤도 치르지 않고 자기 고향인 소라로 올라갑니다. 딤나에 살고 있었던 삼손 아내의 아버지는 이스라엘 출신의 사위가 가뜩이나 마땅치 않았는데 첫 날 밤도 치르지 않고 소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딸을 내기에서 이긴 자 중 한 명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다시는 삼손이 딤나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탓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삼손이 딤나로 다시 아내를 찾으러 갑니다. 염소 새끼를 장인에게 주며 화해를 표한 삼손이 아내를 달라고 말하자, 당황한 장인이 사실을 털어놓고 처제가 더 아름다우니까 처제를 아내로 삼으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삼손의 반응을 사사기 15:3절이 이렇게 보고합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이 구절을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에 아주 섬뜩하게 번역했습니다. “삼손이 말했다. 더는 못 참겠소. 이번에는 내가 블레셋을 쳐부수어도 내 잘못이 아니오.” 이후 들로 나간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를 붙잡아 꼬리와 꼬리를 맨 뒤에 그 꼬리에 불을 붙이자 여우들이 불을 끄기 위해 들녘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추수할 낱알들을 불태웁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삼손의 장인, 아내는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고, 유다 땅 레히로 피신해 있던 삼손 역시 동족 유다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로 인해 포로가 되었음을 사사기 15장이 보고합니다.  무슨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이야기냐고 반문할 교우들이 있을 사사기 기사를 통해 저는 5-6월 즈음에 출간할 사사기 읽기 두 번 째 책에 이 부분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삼손의 감정적인 신앙의 행위가 자기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불행을 자초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에서의 감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이스라엘 역사의 지속적인 방해꾼인 에돔이 탄생했습니다. 더불어 이스라엘을 민족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끈질기게 괴롭혔던 가나안의 역사를 구약은 증언합니다. 전혀 사사답지 않는 일탈을 지속했던 삼손의 감정적인 행위로 인해 그는 타인도 죽이고, 자기도 불명예를 쓴 최악의 사사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반면교사를 삼아야 하는 교훈은 설교를 통해 수없이 선포했던 것처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감정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제 성서일과 묵상을 나누고 설교를 맺겠습니다. 2월 21일(화요일) 묵상 성서: [열왕기상 19:11-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제목: 세미한 소리로 오시는 하나님
  목양의 현장은 전쟁터가 맞다.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목양 현장이다. 모교에서 교수로 사역하고 있는 후배가 학위수여식이 진행되었음을 SNS에 올려 알게 되었다. 금년에도 상당수 많은 후배들이 목회현장으로 나아올 텐데 축하보다는 안쓰러움이 더 큰 이유는 현장이 전쟁터라 그렇다. 목양의 현장에서 30년이 넘게 사역하다보니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시끄러운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공할만한 인위적으로 만든 감정적 소음의 현장에는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오셔서 그에게 미션을 주시는 열왕기상 19장의 성서일과 텍스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으신 하나님, 지진 가운데 계시지 않으신 하나님,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으셨던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세미한 소리가운데 엘리야에게 임재 하셨다.

  세인교회는 개척 이후 상업적인 목적의 부흥회를 하지 않았다. 교우들도 이런 부흥회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기 때문이다. 감정을 자극해 열광의 도가니로 만드는 상업적인 부흥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라난 고향교회에서 같이 신앙 생활하던 동기들이 약 50명 정도였다. 그들 중에 은사중심적인 성향의 친구들이 상당수였다. 당시는 그게 유행이었으니까. 오늘의 언어로 대체한다면 임파테이션 성향의 은사 제일주의로 치닫던 교회의 모양새로 인해 친구들도 상당수 그렇게 잠식당했다. 대단히 슬픈 것은 그렇게 신비주의적인 은사로 은혜를 말하던 친구들은 지금 교회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목사로 선지 30년이 넘었다. 사역의 증인으로 흔들리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 목사나, 성도나 결국 나를 크리스티아노스를 견인해 주는 것은 은사가 아니라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말씀은 세미한 가운데 임한다. 인위적인 부흥회에서 임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달리는 댓글 중에 요한계시록의 신비, 비유의 진실, 말세의 경고음이 들리고 있음 등등 따위의 댓글들이 쏠쏠하게 올라온다. 스팸의 스팸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전인격으로 세미하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귀 기울인다.

결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저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감성을 터치하시는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하지만 거기에서만 머물면 여러분은 신앙적 기형아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그 감성적인 은혜를 견고히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감정적인 신앙은 엄격한 잣대로 정의한다면 그건 종교적 자기만족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내 감정을 터치하시는 성령의 만지심을 경험했다면 그분이 요구하시는 영적인 조명을 말씀으로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내 감정적인 터치를 하신 내용이 성령의 인도하심임을 확인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말씀과 만지심의 의도대로 의지적인 결단에서 흔들리지 말고 그 말씀대로 사십시오. 에서처럼, 삼손처럼 감정대로 산 자들을 거울삼아 그들이 살았던 그 반대편에서 지정의의 신앙적 균형을 잡고 이 험악한 세상을 진짜 신앙으로 이기십시오. 다시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 감정대로가 아닌 말씀대로 사십시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