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06.19 셀 사역2024-04-22 16:16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혹시 읽었던 글(소설, 수필, 시 그 밖의 등등)에서 나를 감동시켜 주었던 글말들 나누어 보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이 땅 위에 오신 (ccm)
● 내 주여 뜻대로 (찬송가 549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나는 나라고 하는 나다.
● 본문: 출애굽기 3:14-15
1)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금송아지 제작 사건이 심각한 죄악인 이유를 설교를 참고하여 말해보자.
● 송아지로 만든 예:
● 성막과 관련한 예:
● 만들고 난 뒤의 ‘차헤크’의 예:  

2) 본문에 하나님께서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라고 당신을 정의한 신학적 교훈을 설교 테마에 맞게 나누어 보자. 더불어 금송아지 사건과 연관하여 4가지의 진면교사와 반면교사의 은혜도 나누어 보자.
●  테마:
● 진면교사 4가지: 1)                  2)                  3)                    4)                 
● 반면교사 4가지: 1)                  2)                  3)                    4)           

3) 하나님을 만들려고 했던 나의 불신앙을 진정성 있게 고백하며 회개하고, 하나님을 자존자로 인정하고 선포하는 합심의 기도를 드리자.
● 하나님을 만들려고 했던 일체의 행위 고백하기:

● 회개하고 하나님을 자존자로 인정하는 합심기도를 드리자.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환우들을 위해 (최정희 집사, 안동철 형제 등)
② 루존 교회의 이전을 위해
③ 6월 장애우들을 위한 봉사를 감당하기 위해
  (섬길 대상을 주옵소서)
④ 금요일에 실시되는 산상 기도회를 위해
⑤ 여름 행사들을 위해
⑥ 부교역자 사택 공사를 위하여(작은 정성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⑦ 담임목사의 건강과 책 수정본 완성을 위해
2) 헌금
3) 광고:
4)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6월 1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 출애굽기 3:14-15/ 제목: 나는 나라고 하는 나다.

  오늘의 시대에 최고의 무신론적 사고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 무신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 하나님은 인간이 충분히 조종할 수 있는 수동적 하나님(만들어진 신)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신론적인 징후들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른 이 말(창세기 3:5절)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순간에 이루어질 환상적인 유토피아의 세계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음’이라는 욕망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메리트는 도스토엡스키가 에둘러 표현한 누구에게도 제한받지 않는 마음대로의 삶일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가 만든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욕망이 분출된 대표적인 사례는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호렙산(신명기에 기록된 지명의 이름으로) 아래에서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난장일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성산에 올라간 뒤, 40일 동안 두문불출하자 성질 급한 산 아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무리들은 아론에게 모세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음을 고지하고 이집트에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을 만들 것을 종용하고 압박하기에 이릅니다. 그러자 그들의 세력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아론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여인들의 금귀고리들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이후 모세의 부재 기간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 것을 종용했던 무리들이 스스로 금송아지를 이집트에서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지칭하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분위기에 압도된 아론은 여호와로 지칭된 금송아지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그들은 여호와의 절일에 먹고 마시며 뛰어 놀았다고 출애굽기 기자가 보고합니다.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 놀더라”(출애굽기 32:6).
  이렇게 난장을 벌이며 먹고 마시던 것을 본 하나님이 모세를 하산하게 하여 심판하는 장면이 출애굽기 32장에 연이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송아지의 형상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행한 행위가 번제요, 화목제였고, 형상은 송아지의 형상이었지만 그 형상의 상징은 이상한 종류의 잡신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자기들을 인도하여 낸 여호와로서의 분명한 인식을 가졌습니다. 후에 이 사건을 회상하는 신명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 형상의 파괴는 혹독하리만큼 무자비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신명기 9:21절).
  차준희 교수는 호렙산에서 벌어진 불신앙의 난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신명기 32:4절과 6절에 기록되어 있는 두 단어에 있다고 해석합니다. 4절에 ‘송아지’로 번역된 ‘에겔’과, 6절에 ‘뛰 놀더라’로 번역된 ‘차헤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금송아지인 까닭은 송아지라는 단어 ‘에겔’은 우회적으로 ‘애송이’라는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는 동시에 고대 근동에서는 소는 신이 밟고 있는 받침대로 사용되었는데 이 말은 다시 말해 우리를 인도한 여호와는 이제부터 우리들의 통제를 받는 수동적 존재 혹은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하나님의 위상을 고의적으로 추락시킨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 ‘차헤크’ 로 번역된 ‘뛰논다.’ 는 동사로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자기들에게 이제는 복종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마음대로 뛰어 놀았습니다. ‘차헤크’ 는 고대 근동에서 성적인 잔치를 벌일 때 사용하던 단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꼼짝 하지 못하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묶어 버린 것입니다. 지금부터 3,400여 년 전에 호렙산에서 발생했던 하나님을 만들어 꼼짝하지 못하게 해 놓고 마음껏 인간들의 죄악 된 행위를 자행했던 그 때의 亂場(난장)이 오늘 21세기에 더 강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갈망과 열망이 너무나도 헛헛하고 신기루와 같은 일인지를 오늘 본문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이집트에서 쫓겨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이드로를 만났고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게르솜과 엘리에셀 두 아들을 낳고 아주 평범한 가정의 행복한 삶을 40년이라는 세월을 살고 있던 어간, 하나님께서 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극적인 엔카운터를 경험합니다. 그곳으로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신 이유는 드디어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며 노예로 살고 있었던 당신의 백성을 구출해야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 출애굽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시기 위해 그 장소로 부르신 것입니다. 사명을 위탁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당황한 모세가 두려운 마음으로 내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이고 다시 만나게 되면 나를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바로를 만나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에둘러 그 사명을 회피하려는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자기를 정의하시는 답변이 본문 14절입니다.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 본문 14절 전반절의 히브리어 텍스트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더불어 이어지는 본문 15절에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당신의 존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를 원문에 더 가깝게 해석을 한다면 오늘 설교 제목이 훨씬 가깝습니다.
‘나는 나라고 하는 나다.’ (I AM WHO I AM.) 그러나 영어성경 거의 대부분에는 대문자로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I AM THAT I AM.” 그렇다면 ‘나는 나다.’로 번역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말씀 드린 세 가지의 번역은 모두 가능한 번역입니다. ① 나는 나다. ②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③ 나는 나라고 하는 나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의 번역을 종합하면 나타나는 분명한 한 가지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은 만들어지지 않는 자존자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애송이 송아지로 전락시킨 이스라엘 공동체, 자기들이 그렇게 나약하고 볼품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무조건 복종하는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인간이 하고 싶은 일체의 것들을 마음껏 즐기며 엔조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향하여 후대에 나라를 잃고 엄청난 고난을 당한 뒤, 쓰라린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것을 경험하고 포로에서 돌아온 시인은 그 아픔을 각인하면서 조상들이 먼저 범한 호렙산의 난장의 범죄를 시편 106:19-20절에서 추상같은 비수로 해석했는데 통쾌한 혜안이었습니다.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당신의 백성들을 그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탈출시키시고 광야에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때를 먹을 물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며 결국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시인은 ‘자기의 영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영광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송아지의 형상으로 전락시킨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그 영광을 잃어버린 비극적 선택을 했다고 탄식한 것은 시인의 기막힌 통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인간 스스로가 영광을 받는 존재가 되어 자유로운 객체가 되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려면 대 전제가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조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로봇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노예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전술했듯이 여호와는 송아지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의 모든 우상과 조각품들에는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이 발을 딛고 있는 발판이 송아지 형상입니다. 또 하나 그 송아지를 만들 때 그 송아지 형상은 철저하게 인간이 설계했습니다. 인간이 송아지를 설계했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금송아지를 제작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창조의 섭리를 거부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우리들에 의해 철저하게 만들어진 피조 하나님임을 선언하는 하나님 거부의 공식적인 선언을 선포한 것이라는 의미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 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즉 ‘나는 나라고 하는 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간의 외압, 인간의 물리력, 인간의 강요, 인간의 독설, 인간의 지성, 인간이 만들어낸 최첨단의 과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시는 자존자이십니다.
  청파 교회를 시무하는 김기석 목사의 “광야에서 길을 묻다.”를 보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해석하면서 이런 종교를 ‘아론의 종교’라고 정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아론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네 가지의 특성을 고발합니다. 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②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고 한다.  ③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욕망을 비우도록 돕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그 욕망을 채우도록 하는 존재이다. ④ 아론의 종교는 희생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에서 반대급부의 은혜를 새깁시다. Ⓐ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십시다. Ⓑ 보이지 않는 것이 곧 영원함이라는 바울의 신앙고백을 담으십시다. Ⓒ 하나님은 우리들이 담으려고 하는 욕망을 비우시는 하나님임을 잊지 마십시다. Ⓓ 모세가 따랐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여정은 자기희생을 담보합니다.
  주와 같은 것에 목숨을 걸게 하는 신 무신론의 시대에, 하나님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무서운 극단적 무신론의 시대에, 그래서 마음대로 즐기고 먹고 마시고 엔조이하도록 부추기는 시대에, 아마도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니 시청 광장으로 나가 마음껏 성적인 일탈과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는 자유 함에 젖어 보자고 손을 잡아 이끄는 시대에,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유일한 골통 품들의 전시장이라고 독설하는 기막힌 시대에 흔들리지 말고 출애굽기 3:15절의 엄위하신 자존자 하나님의 신실하신 파송에 진정성 있게 아멘 하여 시대의 마지막에 기필코 승리하는 우리 세인지기들이 됩시다. 본문은 모세만을 파송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파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인지기들에게 이르시되 나는 나라고 하는 나다 또 이르시되 세인지기들아 대한민국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는 나라고 하는 나가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