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교단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이런 제하의 기사가 났다. “펜데믹 끝났지만 한국교회 목회자 47% 번-아웃”
부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팩트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어찌 47% 뿐일까 싶다.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아픔이 코로나 후유증이고 또 뼈아픈 것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었던 천재지변이라고 코로나 사태를 정의하고 치부하면서 자위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코로나 공격은 교회를 맹폭한 게 사실이다. 그러지 않아도 신 바벨리즘의 총아이자 황태자라고 볼 수 있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천박한 자본주의의 대명사이자 대체 신인 맘몬의 무자비한 통치로 인해 ‘하나님 없어도 무방함’이라는 틀이 무신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기독교신앙인들의 삶의 자리까지 침투하여 공고하게 자리매김함으로써 신 사사시대를 활짝 열어 놓는 수훈갑의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거의 한 세기 전에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가 예상했던 문화의 속성은 거의 완벽하게 성취되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나는 목회를 하면서 문화와 거리를 두지 않고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문화의 위력이 너무 커져서 이제 그럴 여력마저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것처럼 여겨지는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2023년을 보내고 있다.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지? 목사는 어떤 사역을 해야 하지? 질문하고 또 질문하지만 못내 답답한 게 사실이다. 조금은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하는 내게 다음과 같이 반문할 것 같다. “여보세요, 꿈 깨세요. 이제 교회 시대는 지나갔어요. 교회 부흥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세요. 그런 일이 앞으로 결코 없을 거니 아예 생각도 마세요.” 이렇게 공격하는 자들은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나와 결이 전혀 다르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교회에 신자 수를 불려서 교회의 멤버십이 더 많아지게 하고, 교회 예산이 수두룩하게 쌓이게 하고, 그로 인해 그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의 위상이 높아지게 함으로 소위 말하는 성공한 목사가 되려는 헛짓이 아니다. 그런 괴물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기실, 진정성을 갖고 고민하고 아파하는 것은 주군께서 위탁한 단 한 명의 영혼을 향한 목양의 진정성조차도 포스트 코로나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여지없이 무시되고 있다는 아픔이다. 나는 이 아픔을 영적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재앙으로 정의한다. 나는 이 재앙이 곧 주님을 무시하는 재앙적인 상황으로 여겨지기에 그렇다. 슬픈 것은 일련의 이런 일들과 투쟁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 힘에 부친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목회 선배가 그의 글에서 지적한 문장을 만난 적이 있다. “교회 공동체가 타락하면 위험한 것이 아니라 해롭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 목사와 성도가 무뎌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해로워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하는 오늘이 무섭고 두렵다. 하루에도 수없이 독백하고, 주절거리고, 결기하고, 시위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 끝까지 하나님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목사로 살게 하소서.” 왜 이렇게 주일은 빨리 오는지 숨차다. 그래도 뭇 성도들은 반짝 거리는 눈빛을 하고 세인 교회 예배당을 채울 텐데, 교우들을 섬겨야 하는 나는 너무 약해 고통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