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를 지나고 있다. 이제 이번 달에 소서와 대서가 있고 더불어 초복, 중복도 기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장마까지 겹쳐 일 년 중에 더위와 싸워야 하는 가장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잠을 자는 시간에도 창문을 열고 자는 것은 으레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주간은 더위와 맞서 싸워야 하는 고통과 맞물렸음에도 창문을 꼭꼭 닫고 자야 하는 이중고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 특히 깊은 밤 시간, 대략 오전 1시로 여겨지는 시간까지 짖어대는 개 짖는 소리의 공해 때문이다. 작년 이 맘 때도 그랬던 것을 보면 내가 동물학자가 아니라 자세히 몰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혹서기간이 큰 개들의 발정기인 듯 사납게 짖어댄다.
교회 주변에는 애완용 개가 아닌 무시무시한 개들의 집합소처럼 보이는 몇 몇 집들이 산재해 있다. 아주 가끔 저녁에 아내와 함께 걷기를 위해 그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소름을 끼치게 하는 괴물 같은 개들이 무섭게 짖어댄다. 아내는 십중팔구 놀라 혼비백산 한다. 이제는 개를 단순히 집을 지키는 도구가 아닌 식구로 여기는 참 이상한(?) 시대가 되었기에 애완이든, 가축용이든 탓할 수는 없는 환경이지만, 개가 개지! 라고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나 같은 범인(凡人)은 모두가 곤한 육체를 달래야 하는 시간마저도 사납게 울부짖어도 나 몰라라 하는 이웃의 견주들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더 더군다나 이제는 깊은 수면에 들어가지 못하는 생리적 연령대를 살다보니 특히 새벽을 살아야하는 목사가 당해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가일층(加一層)하다. 사정이 이 정도면 개를 키우고 있는 견주들이 그 시간만큼이라도 입마개를 하든지 하는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끔쩍도 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교회 주변에 사는 이웃들도 당하는 고통이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작년에 이어 금년에는 변함없이 짖어대는 개들이 주변에 왕성한 것을 보면 서부동 1003번지 일대 이웃사촌들은 성자들만 사는 게 분명하다. 지난 주 어느 날, 전 날 개소리 때문에 잠을 꼬박 설친 아내가 분노를 표했다. “여보, 나라도 민원을 넣어야겠어요.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요.” 아내의 말을 듣고 이제 본격적으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나님, 이번 삼복 기간에는 꼭 저들을 불러주십시오. 이번에는 반드시!” 나는 신학을 잘 몰라서 신학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사람을 위해 개가 있어야 하는 겁니까? 개를 위해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겁니까? 참 요지경 세상을 살고 있다.
세명대학교 캠퍼스를 휘감고 있는 운무가 너무 황홀하게 보이는 예비일 아침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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