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에 선 심정으로
“아버지,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세련된 설교도 아니고, 성서 신학적으로 엄청난 내공을 가진 설교도 아닌데,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 나는 울고 있네요. 나도 내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울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요.”
아들이 언젠가 내게 전언해 준 말이다. 아들이 영적 감동을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 설교를 통해 진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했지만 내색할 수 없어 실없는 소리를 했다.
“이놈아, 애비 설교에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비평만 하더니 담임목사 설교에 울어! 나쁜 놈이네.”
아들을 그렇게 감동 시킨 후배를 어제 수요일 성회 강사로 세인 교회 강단에 세웠다. 아들을 감동 시키는 설교자를 세웠으니 나 또한 기대 충만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50여 분의 설교가 끝났다. 잠시의 고요함이 예배자들을 덮쳤다. 동시에 왜 아들이 울었는지 알았다.
무시무시한 영성이었다.
강사를 잘 섬기고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영성이 무시무시하네요.”
이제껏 보았던 젊은 목사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범접할 수 없는 영성, 천박하거나 인위적으로 가공한 천박한 영성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그렇게 살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영성, 바로 그것이었다.
성회를 마치고 차 한 잔 나누며 마무리 교제를 하는데 후배가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세인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와 근래 강해하시는 선배님의 히브리서 원고를 읽고 설교 동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어떻게 설교를 이렇게 준비하시는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강사가 그냥 갈 수 없어서 주고 가는 립 서비스를 받았다. 그러면서 내게 한 마디를 던진다.
“저는 제 목회를 시작한지 이제 일 년이라 풋내기입니다. 그래서 매 주일, 강단에 설교 준비를 하고 올라갈 때 마치 단두대에 선 심정으로 섭니다.”
후배의 고백을 들으면서 뭔가 한 자리 얻을 수 없을까 하여 종로 5가에 서성거리는 정치 목사, 자기 목회 철학이 없이 남의 것들을 베끼며 어떻게 해서 목회의 성공 대열에 진입해 보려는 스킬을 배우는 안타까운 목사들도 수두룩하지만, 성결교단에 이렇게 시원적 복음의 은혜와 원색적 예수 그리스도에게 천착하며 달리는 런 한 줄기 빛과 같은 후배가 있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단두대에 선 심정으로 강단을 섬기는 목사, 그렇게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목숨 건 목사가 후배라서 행복하고 기쁘다. 한 참 어린 후배지만 강사로 초청한 후에 그와의 교제를 통해 무지하고, 무능한 선배는 엄청 공부하며 도전 받았다.
후암 백합 교회 김선인 목사에게 너무 큰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