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폭우가 내리고 난 뒤부터 매미 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아니,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면 소리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귓전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의 전령이 찾아온 것이겠지요. 지난 여름 내내, 개 짖는 소리, 매미 소리 그리고 돌 깎는 소리로 인해 소음공해가 심각했는데 귀뚜라미 소리는 일련의 소리들에 비하면 정겹기까지 합니다. 8월 15일이 지난 후부터 제천은 아침, 저녁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 더 바람이 차가워지겠지요.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病 중에서) 기형도가 읊조린 이 시어(詩語)를 나 또한 주절거린 지가 이미 오래되었지만 왠지 이 시인의 낙조(落照)가 금년에는 더 더욱 성큼 제게 다가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나이를 살고 있기에 시인이 더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어제도 폭우가 한 차례 지나쳤습니다. 금년 봄, 너무 비가 오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기후 재앙이 피부로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염려했던 봄이었는데, 여름 내내 너무 많이 내린 비로 인해 이제는 그만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간사한 기도를 하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인지 또 다시 절감하고 있습니다. 서재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명대학교 산자락 밑 능선으로 옅은 구름이 내려앉아 한 폭의 수채화가 연상될 정도로 신비롭습니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프다는 것을 뺀다면 참 근사한 일이라는 소회를 저 또한 동의합니다. 젊은 시절,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하고, 부연을 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선명하게 보이니 말입니다. 내 몰골이 노랗게 단풍이 들고 있지만, 절망하지 않는 것은 붉은 세월이 푸른 세월로 승화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번 주간은 제가 교회를 떠나 일주일간 다른 공간에 있을 예정입니다.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교회를 비우면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아픈 교우들이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 몇 주 전에 제 일정을 알고 있는 서울에 거주하는 지인 권사님이 제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목사님, 정말로 그렇게 하시기 어렵겠지만, 한 주간만 모든 걸 다 잊고 사모님하고 온전히 쉬다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지난 시간, 치열했던 그 치열함은 잠시 내려놓으시고 그냥 쉬셨다가 오셔요. 부탁입니다.” 타 교회 성도의 사랑 어린 조언에 감사했습니다. 휴가처에도 귀뚜라미가 울겠지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고 오겠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울음소리를 통해 또 다른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저 또한 소망해 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교우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