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 때문에 슬퍼할 수는 있다. 그렇다. 나는 슬퍼할 것이다. 나는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내 눈물로 채울 것이다. 신약성경의 기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예배하는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지 않을 때, 내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설득할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적어도 그들을 위해 울 수 있다. 만일 우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면 탄식이라도 할 것이다. 나는 장차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 자신이 어떻게 할지는 분명히 안다. 나는 하나님의 양떼를 배반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그들에게 거짓말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온갖 종류의 세상 이야기를 동원하여 그들의 관심을 끌어 그들을 몰아가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타임’ 지의 기사를 소재 삼아 설교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 텅 빈 교회에서라도 말씀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들 때문에 울 것이다.” (아이든 토저, “세상에 무릎을 꿇지 말라”, 규장, pp,175-176.) 20세기 선지자라고 불리던 에이든 토저의 사자후다. 내 서재에는 그가 쓴 21권의 책이 있다. 13권은 이미 독서를 완료한 책이고, 8권은 지난 달 구입했다. 토저에 대하여 호불호가 있음을 나는 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를 폄훼할 것이고, 건강한 보수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존경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현장 목회자는 대동소이하게 7월을 힘들게 보냈을 것 같다. 교회 안팎에서 목사를 향해 던지는 이모저모의 도전들 때문에. 7월 중순 즈음에 출간 되어 있는 토저 목사의 책을 웹상에서 서베이 했다. 그리고 읽지 않은 8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출판사인 규장 책이지만 구입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련하리만큼 예수의 본질에 대하여 천착했던 그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서다. 아프더라도 경책하고 싶어서였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종교적인 언어로, 그리고 21세기에 맞는 기독교적인 언어는 이런 언어들이라고 유혹하는 편리함과 안락함의 언어들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다그치는 오늘, 내 사역의 현장과 한국교회에 전해지고 있는 類似 복음과 맞서보기 위해 다시 그의 글로 도전받고 싶어서다. 오늘 새벽 큐티 시간에 교우들에게 ‘보킴’의 메시지를 복기했다. 가나안 정복 초기에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대로 행하지 않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강력한 경종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사자가 히브리 공동체에게 전할 때, 백성들이 반응했던 ‘보킴’을 나누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삿 2:4-5)
죄에 대한 아픔을 인정하고 통곡하는 울음이 사라진 사람과 시대는 절망이며 저주다. 이점에도 그랬지만 토저는 나를 자꾸 울게 한다. 쓰라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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