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상에 설 때마다 나름 원칙을 세운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양치를 한다. 세면을 철저하게 한다. 면도는 단정히 행하고 눈썹은 정리하고 선다. 머리는 감은 뒤에 잘 빗고, 양복을 입을 때 바지선이 갈라지지 않았는지 세밀히 살피고, 가능하면 양복에 맞는 넥타이를 정해서 예배 인도 중에 교우들이 색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한다. 양복상의 단추는 반드시 채우고, 와이셔츠는 깨끗하게 입어 행여나 교우들에게 손목 부분이 결코 불결하지 않게 보이도록 신경 쓴다.” 등등 열거하면 그래도 몇 몇이 됩니다. 물론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신신당부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저 또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차제에 또 한 가지를 밝힌다면 적어도 이발은 한 달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이기에 추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강박증과 또 그것이 성도들에게 목사가 보여야 할 예의라고 믿기에 그렇게 30년을 지내왔습니다. 열거한 내용 중에 거의 대부분은 내가 노력하면 되는 것들인데, 이발은 상황이 복잡합니다. 바로 이번 같은 경우입니다.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부터니까 어언 31년째입니다. 해서 이제는 미용실에서 커트를 하는 것이 삶의 한 내용이 되었습니다. 계속 단골로 가는 미용실을 이용하지만, 미용사가 바뀌거나 성실하지 않은 모습이 보이면 미용실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일주일 전 즈음 아내가 개원한지 얼마 안 되는 미용실을 소개 받았는데 커트를 해보니 그런대로 성실하게 잘 해주었다고, 제게도 권해 지난 주간에 그곳에 방문해서 남성 커트를 했습니다. 이발을 완료하고 난 뒤, 아뿔싸 했습니다.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의 양쪽 균형을 맞추지 못한 것은 기본이고, 가위질 역시 들쭉날쭉 이다보니 꼭 쥐가 파먹은 것 같이 어설프게 해 놔서 후회막급이었지만 엎질러 진 물이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일에 교우들 앞에서 서야 하는데 조금은 불안합니다. 위장 전술을 최선을 다해 해보겠지만 워낙 머리 원판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교우들이 불쾌해하지 않을까 송구스럽기까지 합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짜증 섞인 톤으로 내 뱉은 말이 이 말이었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다! 이번에 제 머리카락을 자른 미용사는 아주 어린 미용사고, 직전까지 제 머리를 만져준 미용사는 중년이었는바 이번에 절감한 게 있습니다. 패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록과 경륜이구나! 이제 목회의 마지막 필드에 들어선 나이가 되었습니다. 친구 목사가 얼마 전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던졌는데 가볍게 한 말이었지만 마음에 새겼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육십을 넘긴 바로 지금이 가장 목회연한 중에 빛나는 시기다. 연륜에 묻어 있는 성숙함, 그 동안 공부했던 내용들의 절정, 그리고 조급해 하지 않는 나름의 여유까지 총체적으로 펼칠 수 있는 나이가 지금이다.” 친구의 말에 숙연해 졌습니다. 지금이 젊은 나이의 목사 시절보다 백배는 다 나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나는 은퇴하고 난 뒤에, 섬기는 교회 지체들에게 참 좋았던 목사로 남을까 아니면 기억하기조차 싫은 목사로 흔적을 남길까를 이제는 고민해야 할 때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 머리를 갖고 어떻게 한 달을 버티지 생각하니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다음 미용실은 정했습니다. 구관을 찾기로. 그리고 다시는 떠나지 않기로. 조금 부족해도 경륜과 관록이 패기보다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