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답게 사는 게 뭐지?
언젠가 국어학을 전공한 신학자가 교회에서 바꾸어야 할 단어 중에 하나가 ‘하나님, 축복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문구라고 지적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축복(祝福)의 의미는 복을 빈다는 뜻인데 복을 주는 주체이신 하나님이 다른 제 3의 존재에게 복을 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한 것입니다. 해서 대체하려면 ‘강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난 뒤부터 버릇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강복한다는 문구를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지난 목요일 인터넷 실시간 영상 송구예배를 드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목사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것 같아, 교우들의 가정을 위해 강복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전화 스피커폰으로, 줌(zoom)으로, 구글미트로 진행한 교우들의 강복기도시간으로 예상한 타임이 약 1시간 30분 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9시 30분부터 진행한 사역이 자정을 넘겨 12시 40분에서 마치게 되었습니다. 무려 3시간을 넘겼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지체들의 가정이 약 10가정이 남아 있는데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강복기도 사역을 몇 년 만에 다시 경험하고 든 소회가 이렇습니다. “어떻게 직전 교회에서 500명을 안수했지!” 지나온 세월을 복기해보니 500명 정도의 교우들을 일일이 안수한 뒤에 맞는 1월 1일은 거의 대부분, 병원에 가서 링거 주사를 맞았던 웃픈 추억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체력적인 소비에도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면서 겁이 나기도 해서 여러 가지 편법으로 송구영신예배 이후에 행했던 개인 안수 강복기도를 피해 왔던 것이 사실인데, 2020년 송구예배는 무슨 배짱인지, 다시 한 번 영상으로나마 이 사역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거의 새벽 1시 즈음 집으로 돌아와서 또 다시 스스로 생각한 것은 객기를 부리지 말자였습니다. 3시간 영상과 전화를 붙들고 교우들을 강복한 뒤에, 의자에서 일어났는데 다리가 너무 많이 부어 걷기가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목은 목대로 갈라져서, 이튿날 일어나 부어 있는 목을 가라앉히기 위해 적지 않은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세밑에 경향신문사에서 추천한 2020년 베스트 10 도서 목록에 오른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를 읽었습니다. 작가는 글에서 이런 화두를 하나 던집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p,138) 이렇게 아주 소박한 소원을 주인공 이순일을 빌려 묻는 작가는 또 다시 이렇게 독자들에게 그 화두에 대한 답을 덤덤하게 털어놓습니다. “잘 살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31년, 목사로 살아왔습니다. 살아오면서 한 가지 목표는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답게 살아야지” 2021년을 여는 새 해 첫 날, 문득 이런 소회가 밀려왔습니다. “목사답게 잘 사는 게 뭐지? 난 목사로 잘 살아왔나?” 또 질문하는 한 해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하기 위해 또 치열하겠지요. 하지만 2021년에는 조금은 알았으면 좋겠다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답을 추구해 보려고 합니다. 글을 마치려는 문득 바울의 토로가 절절하게 들려 글말에 남깁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