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전성시대
친구가 연휴 기간 중에 노래 하나를 카톡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멘트를 첨부해서. “이미자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진정한 고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 함께 멋진 목회자로 살아가자.” 그래서 들어보았습니다. “내 삶의 이유 있음은” 나 이제 노을 길 밟으며 나 홀로 걷다가 뒤돌아보니/인생길 구비마다 그리움만 고였더라/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이었지만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산새는 울고 추운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더라/나 슬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내안에 가득 사랑이/내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 친구 목사가 이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친구는 동기 목사 중에 정말 목회를 잘 하는 본받고 싶은 친구이기에 그가 왜 이 노래를 제게 보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들어 펜데믹의 절망이 밀어닥친 작금, 목사로 사는 그나 나나 경험해 보지 못한 난처함과 곤혹스러움을 당했지만 그래서 산새는 울고 추운겨울 눈밭 같은 나날이지만 동백꽃은 여전히 피어 있는 것처럼, 아무리 슬픔이 엄습해도 내안에 사랑이 남아 있기에 잘 살아내자는 동변상련의 위로를 제게 전한 것이겠지요. 요즈음은 트로트 전성시대인 것 같습니다,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여기저기에서 구성진 트로트 가사들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 트로트 가수는 난데없이 소크라테스까지 등장시켜 많은 세인들이 당하는 아픔을 철학적으로 묻는 대중가요까지 발표한 것을 보면, 말 그대로 트로트 전성시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시대가 흐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친구가 보내준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저는 다른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향한 내 비웃음/나를 향해 돌아오고/어리석고 미련한 그 백성들/나의 모습과 같네/찢기고 상한 나의 영혼을/끝까지 사랑한 아버지의/그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으리요/내 생명 다해 주 노래하리라/내 생명의 근원 되신/나의 삶의 이유 되신/내 모든 것 나의 전부/아버지 나 다시 일어섭니다/어리석고 미련한 나/믿음 없어 실패한 나/그런 나를 안아주시는/아버지 나 사랑합니다. 결코 부인할 수 없이 쏟아지는 은혜, ‘내 생명의 근원 되신 나의 삶의 이유 되신’ 그 분으로 인해 또 달려가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서재 창밖에 참 오랜만에 가을 빗소리가 세차게 들립니다. 이 비가 끝나면 조금 더 추워지겠지요. 그래도 모두가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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