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100%와 0%의 상관관계2024-04-17 18:11
작성자 Level 10

100%와 0%의 상관관계 


지난 주친구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서울에 다녀왔습니다친구가 목회하는 곳은 강북 지역 중에도 나름 부유층이자 젊은 화이트컬러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특색이 있어 그 교회에서는 그들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그 중에 하나가 유아들을 위하여 실시하는 문화교실인데 마침 방문한 날은 6-7세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동화가 있는 날이었습니다친구 모임을 파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시간에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일련의 무리들을 만났습니다마스크로 무장한 앳된 아이들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삼삼오오 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코로나 시국에 6-7세의 아이들을 그것도 교회 공동체에 보내기 위해 오는 아이들과 엄마들은 결연한 마음을 갖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한 것은 아이들을 맞이하는 친구의 아내는 웃고 있었지만 뭔지 모르게 불편한 얼굴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이윽고 사모가 불편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아내에게 전해준 친구 목사의 변 때문입니다그녀의 변은 이렇습니다.

아이와 엄마들이 이 프로그램에는 거의 100% 출석해요문제는 저 젊은 엄마들 중에 상당수는 본인은 물론 아이들까지 코로나를 핑계로 주일에 교회를 나오지 않아요온라인 예배를 드린다는 핑계로.”

이 말이 어찌 친구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만이 일일까 싶어 아내도 공감했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신학교 교수로 있는 친구와 사적인 전화를 했습니다그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목사코로나 시국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는 성도들을 죄인 취급하면 안 돼오히려 저들이 정상일 수 있어목사들이 조심해야 해그리고 저들을 품어야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전화 통화 중에 농담 반진단 반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2대 담임목사는 ◯◯◯ 교수가 와라우리 교회 젊은 신자들이 대환영하며 열광하겠다.”

현장 목회자와 신학교 교수와의 괴리감은 단지 신학적인 차이에만 있지 않습니다정글 같은 목회 현장을 이론의 장으로 착각하는 신학교 교수들의 현장 무감각이라는 괴리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차이입니다.

바보 목사가 아닌 이상동시에 소위 말하는 극단적 근본주의 목사가 아닌 이상코로나 사태가 몰고 온 전무했던 충격적인 교회 상황을 무지한 편견으로 몰고 가는 목사는 없을 것입니다동시에 대다수의 건강한 목회 신학을 갖고 있는 목사는 온라인 예배로 대변되는 한국교회의 현 상황이 도리어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방법론이 있으니 말입니다해서 온라인 예배자들을 전혀 신앙이 없는 자들이라고 매도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문제는 전혀 신앙적이지 않은 행태로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적인 신앙을 악용하는 자들에 대해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에 따른 목회적인 딜레마를 견인할 만한 코로나 신학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헤롯 성전을 청결하실 때주군의 정서는 분노였습니다그런 분노는 당시 종교적인 실권을 차지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던 전혀 신학적인 올바름을 갖고 있지 못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타격하는 혁명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것이며동시에 지도자들의 악한 행위에 눈감으면서 거기에 걸맞게 자신들 역시 종교적인 편리주의를 즐겼던 대다수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 안에 있었던 무뎌진 종교인들을 향한 철퇴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AGE OF THE AC’ (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를 현직 목사인 저는 대단히 민감하게 숙고하고 있습니다백신과 치료제가 등장해도 이미 극단적 편리주의와 안락함을 맛본 형식적 그리스도인들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결코 코로나 이전의 교회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저이기에 코로나 이후’ 목양을 고민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더 엎드리는 요즈음입니다자금이목사가 치열하게 영적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예배 외적 요소의 100% 출석하면서도 예배 요소에 대해서는 온라인을 핑계로 100% 결석하는 이중주를 벌이고 있는 자들에 대한 해석입니다어떻게 저들을 이해하고 목양해야 하는가말입니다몇 주 전사석에서 만난 서울에서 목회하는 또 다른 친구 목사의 변이 웃픈 가슴 저림으로 다가옵니다.

이 꼴 저 꼴 보지 않으려고 조기 은퇴하련다.”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목사나성도나 공히.

키리에 엘레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