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인데. 지난 주간에 친구와 사석에서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나 나나 거의 현장 사역을 하지 못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즈음이라 오프 라인 만남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약 두 달이라는 시간, 어찌 보면 정상적인 사역에서 완전히 빗겨나 있는 전무했던 일을 경험하면서 초기에는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인간이 환경의 동물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지금의 상황을 뒤돌아보며 일련의 일들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하려는 나름의 긍정의 여백도 느껴지는 부분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대화중에 친구가 이렇게 저에게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 목사. 우리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이제 거의 두 달을 겪으면서 적지 않게 힘들었지만 나는 근래 코로나 사태 이후에 대한 교회론을 설정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전무했던 비정상적인 틀을 교회도, 목사도, 성도도 아주 찐하게 마주쳤다고 해서 만에 하나 흔들린다면 그 동안 목사는 잘못 가르쳤고, 성도는 잘못 배웠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불과 60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믿음에 대한 근간이 요동한다면 그건 영적 지구력이 전혀 없었다는 증거일 거다. 그러니 이번에 코로나 이후, 너나 내가 섬기는 교회의 내구력이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공부하는 좋은 기회로 만들자.” 친구의 말을 듣다보니 묘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살아온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불과 60일 정도라는 크로노스의 반차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경험했다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새가 있다면 그 동안 정말로 허접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싶어 친구의 말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세인 공동체에 속해 있는 지체와 또 다른 교제를 했습니다. 교제 중에 그 지체가 제게 이런 소회를 전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온라인 예배를 드린 지난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로 가슴앓이를 한 것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바뀌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드림의 감동을 교회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릴 때와 같이 똑같은 은혜로 접목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그리스도인이었다는 말인가! 를 성찰하며 많이 반성했습니다.” 지체의 이야기를 듣다가 저는 오히려 역설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성찰하고 있는 지체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말입니다. 그가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라는 것이 너무 행복했기에 말입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겠습니까? 두 달이라는 어찌 보면 짧고 짧은 크로노스의 연속선 안에 있었다고 언제나 늘 항상 함께 하셔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어 주시며 더불어 계속해서 나와 여러분을 감동의 메시지로 가르치고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허접한 영적 지구력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다시 출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경주는 100m 단거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하고, 그 분의 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날까지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영적 마라톤이기에 나는 작금의 상황을 도리어 영적 지구력을 키워내는 절호의 기회로 만들어가는 전화위복의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앙계’ 5월호에 글을 기고해 달라고 부탁을 받고 기도하며 글을 쓰다가 이렇게 첫 문장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계시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있는 지금 영적 지구력을 더 키워가는 세인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