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홍훈표 권사님이 어떤 일로 교회에 다녀가셨습니다. 아내가 교회 출입문에서 권사님을 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권사님께서 교회 마당에서 교회 전경을 이리저리 훑어볼 때, 마음이 아파 혼났다고 저에게 전언해 주었습니다. 지난 4주 동안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었던 내 교회의 예배 장소,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내가 섬기는 교회를 보니 왜 아니 그러했겠는가! 하는 정서적 동의가 내 마음에 진하게 전해졌습니다. 지난 주간에 매장에서 장사를 하는 교우들의 사업장을 방문해서 힘들어 하고 있을 지체들을 격려하는 비대면 심방을 진행했습니다. 따뜻한 커피와 약간의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4주째 오프라인에서 교우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픈 상황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교우들의 경영터를 직접 방문하여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매장에 도착해서 교우들을 오랜만에 눈으로 보았습니다. 한 지체를 보는 순간, 너무 많이 야위어 있는 것을 보며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이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나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으려고 힘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목사의 써프라이징 심방을 받고 매장 현장에서 기도를 받는 또 다른 지체는 저를 보는 순간,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려고 얼굴을 돌리는 것을 보며 마음이 짠했습니다. 다음 주간에는 온라인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없는 80세 이상 되는 노 권사님들을 비대면(非對面)으로 만나보려고 합니다. 직접 집에 들어가서 심방을 하지는 못해도 외부에서라도 권사님들의 얼굴을 뵙고 기도해드리려고 합니다. 실시간 인터넷 예배라는 말 자체가 무슨 말인지를 이해할 수 없는 권사님들을 외부에서 얼굴이라도 직접 뵈어야 제가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예배 시간에 전화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담임목사 설교를 지난 4주 동안 드려야 했던 권사님들의 영적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려는 비대면 심방에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목사로 서서 현장에서 31년을 교우들과 부대끼며 온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유의 일을 경험하면서 근래 두 가지 준비를 날마다 다짐합니다. 사태가 끝날 때까지 교우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목사, 사태 이후 교우들이 교회에서 서로가 재회했을 때 지체들끼리 당황하지 않도록 하는 코로나 사건에 대한 목회신학적인 모범 답안을 제시할 수 있는 목사로 지금의 일상에서 최선의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밀접한 곳에서는 사랑의 길(道)이 정의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현대사상총서,p,273) 대학원 시절에 의미 있게 읽었던 라인홀드 니버의 말대로 목사는 무차별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길이 유일한 정의로 가는 길임을 믿는 자인데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싶어집니다. 재론하지만 코로나로 참담한 일이 벌어진 오늘, 세간의 사람들은 목사를 평범한 사람은 고사하고 이제는 벌레보다 못한 상대하지 못한 존재로 여겨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비인간적인 폭력과 폭거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목사가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내 주변에는 교회를 사랑하고, 목사를 염려해 주는 사랑하는 교우들이 울며 중보해 주고 있는데. 목사는 영화 ‘미션’의 명대사처럼 힘이 정의라면 사랑이 설 자리가 없음을 알고 사랑의 길을 가는 자인데.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흔들리지 않으렵니다. 왜? 그 사랑이라는 길을 가는 것이 유일한 정의임을 믿는 나는 목사니까.
세인 교회 공동체에 속한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라며 엎드립니다. |